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시간 속에 살 것인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내 자식이 백로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자식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이나 했다는 맹모삼천지교는 교육적, 인적, 사회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클래식한 인용구다. 요즘은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사는 공간, 소비하는 시간,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된다는 말이 유행하며 자기 계발, 인생설계에 있어 환경설정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고 있다.
삶의 변화를 위해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것은 그 효용이 무용하다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설파한다. 그것은 강력한 의지력을 지닌 초월적 인간에 가까운 극소수의 인간만이 가능한 행동양식이며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믿기보다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어떤 강제력을 설정해 두었을 때 오히려 좋은 성과를 내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면서 내일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상이라 말했다는 아인슈타인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정말 아인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비영리 공공 서비스 조직 전미안전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차선 변경 시 조향간섭을 하는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이 개발된 뒤 차선이탈 사고는 11%, 차선변경충돌사고는 14% 감소했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이는 "깜빡이를 켜지 않으면 차선 변경에 제한을 건다"라는 기술적 제약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 냈음을 의미한다. 기술적으로 특정 행동을 제지할 수 있도록 혹은 수행할 수 있도록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면 보다 나은 결과값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사실 기술이 점차 발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신기하고 첨단화된 환경설정 툴을 갖게 되었을 뿐이지 인간의 의지를 믿지 못해 보조적 수단을 사용해 온 것은 이미 고릿적부터 자행되어 온 일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서 따르릉 울려대는 알람 시계를 머리맡에 두고 자던 일, 혼자서는 도저히 헬스장에 꾸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친구들과 계모임을 만들어 벌금을 내가면서 운동을 하려 애썼던 일, 스터디 모임, 독서모임, 새벽러닝 모임 등 다양한 모임에 들어가서 소속감과 강제성에 떠밀리며 일종의 "한 배를 탔다"는 안도감과 동류의식에 힘입어 목적달성을 위해 애틋하게 힘썼던 일들. 이런 모든 종류의 일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사랑스러운 발버둥에 가깝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작심삼일이라 할지라도, 변덕이 죽 끓듯 해 보이는 변심의 반복일지라도, 그 사랑스러운 몸부림에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겠다는 한 인간의 애틋한 몸부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누가 뭐라 하건 상관하지 말고 자기를 위해 좀 더 그럴듯한 환경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을 망설이지 말자. 그리고 혹시 그런 움직임 속에 살아가는 귀인을 발견한다면 사심 없는 찬사를 아낌없이 보내주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