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자, 모르는자, 아는 척하는 자, 모르는 척하는 자

돌고 돌아 어디로

by 정 호

세상에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아는 자, 모르는 자,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자,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자.


아는 자는 사실상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드러나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 깨달은 자는 신적 존재에 가깝기에 드물고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끝없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묵묵히 자신과 세상을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타인에 대해서 관심과 애민의 마음을 품고 있으나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자기 한 몸의 해탈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렇게 그들은 고요히 살아간다.


모르는 자는 이와 반대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여러 이유로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먹고살기 바빠서, 공부가 적성에 안 맞아서, 깊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태생적으로 싫어서, 먹고 마시고 놀기 바빠서, 적 외적 유혹에 취약해서, 챙기고 책임질 것이 많아서, 고뇌를 무용하고 하찮고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서, 이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는 자의 존재에 대해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보는 눈이 없기에, 알지만 모르는 척하는 자를 자신과 같이 알지 못하는 자라고 판단한다. 이들은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자들을 추종하고 따른다. 이들은 그들을 자신의 무지를 깨우쳐줄 현명하고 지혜로운 선각자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줄 모르는 체 자신의 신체적, 영적 자원을 빼앗긴다. 그렇게 그들은 호들갑스럽고 어리석게 살아간다.


비록 삶의 어떤 단편적인 부분에 불과할지라도, 그 일부를 알게 되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일종의 통찰이나 혜안, 남들과는 다른 것, 혹은 보다 포괄적인 것을 바라볼 줄 알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깨달음의 초기에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남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그것은 우쭐댐이나 자만심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대가 없이 순수하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무용한 행위였음을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이나 올바름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몇 번의 부딪힘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게 된다. 정의, 배분, 공정, 성실, 도덕, 교육, 화목, 이처럼 선을 지향하는 가치들은 언뜻 보기에 명확하고 확고한 지점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을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다양한 때와 장소에서, 그리고 다양한 사람을 통해 각각의 모습을 드러내며 결코 일치되지 않는 형태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 따라서 내가 이겨 나의 선을 달성한다 한들 그것은 절반의 선에 불과하고 내가 져서 나의 선이 좌절된다고 한들 그 또한 역설적이게도 절반의 선이 달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이기나 지나 어차피 선이 달성되는 것이라면 굳이 나의 선을 주장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되고 어떤 주장이 명확하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더 이상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교육적"이라는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선을 이룩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맡은 보직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은 쓸데없는 일에 힘 빠지게 하지 말고 아이들과 수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교재연구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 달라고 끊임없이 외친다. 이것이 교사가 교육과 학생을 대하는 기본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거짓된 것도, 기만적인 것도, 자기 편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로 선한 것이며 교육적인 행위임에 분명하다. 대부분의 선량한 교사들은 분명 학생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존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소위 관리자라고 불리는 교장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낙후된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것이고 외부 기관에서 시행하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여 아이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교육적인 행위다. 허술한 법령 덕에 현장체험학습을 통해 교사가 직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 또한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교육적인 행위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학부모를 위해 늦은 시간 학교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어떤 행사를 기획하는 것 또한 교육적인 일이다. 안전과 관련된 위험요소나 실무를 진행해야 하는 교사들의 부담감, 그 외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이는 교장의 입장에서 분명 선한 의도를 가지고 진행되는 교육적인 행위임을 의심할 수 없다. 교장 역시 교육자이며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모든 결정에 선행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육지원청이나 교육청 또한 마찬가지다. 교육지원청과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관료들 또한 교육적인 근거 아래 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한다. 교사들은 교육청만 없으면 교육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상 또 모든 것이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장학사나 장학관, 교육행정직원들이 교사를 괴롭히려고 어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리 없다.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새로운 정책을 실행함의 기준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는 각자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며 가장 가까이에서 부대끼고 있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고 각자에게 지워지는 사회적 책무가 다르기 때문이다. 더 힘든 것은 같은 교사라고, 같은 교장이라고, 같은 교육행정직원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교사는 디지털 교과서나 에듀테크 같은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것이라 말하고 어떤 교사는 기초학력미도달 학생이 1/3인 학교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기초학업능력부터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교장은 학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교육적인 것이라 말하고 어떤 교장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선생님들을 묵묵히 지원해 주는 것이 교육적인 것이라 말한다. 그 누구의 말도 틀린 말은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으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처럼 모두 각자의 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자신의 선을 실현시킨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겪다 보면 나의 선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되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자가 되고, 한 발을 더 들이밀게 되면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자가 된다. 앎과 모름은 사실 공존하기 때문이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하는 자는 일정량의 뻔뻔함과 오만한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그것은 좋게 말하면 리더십과 카리스마적인 태도라 할 수도 있겠으나 그들 스스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뻔뻔하다고 볼 수 있으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점에 있어서 오만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이는 조직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결정권자가 흐릿하면 아무것도 진척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이 그 특유의 뻔뻔함과 오만함을 점점 강화시켜 간다는 데 있다. 모르는데도 아는 척하는 자들도 처음에는 머뭇거림을 품고 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나의 선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 머뭇거림을 끝까지 붙들어 둘 수만 있다면 이들은 모르는데도 아는 척하는 자에서 아는 자로 진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을 내려놓는 순간 이들은 독재자가 된다.


아는 자,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자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르는 자와 달리 그들은 앎에 대해 접근하려 한다는 것이다. 비록 접근 후의 태도가 각자 달라 서로의 포지션이 달라졌을 뿐 앎에 도달하려는 태도 하나만큼은 동일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자는 끝까지 머뭇거림을 내려놓지 않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자는 회의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조금 더 진취적인 자세로 각자 아는 자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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