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의 탈을 쓴 갑질은 아닌가
야 그 사람 호불호가 심해
피곤해지기 싫으면 적당히 비위 맞춰 줘
호불호가 심하다는 말은 무언가 이상하다. 그것은 당연한 것을 특별한 성향인양 표현하는 것 같아서이다. 호불호가 없는 사람이 있는가? 호불호는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호불호가 없는 인간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이처럼 당연한 것을 마치 특별한 성향인 것처럼 말하니 이상하다. 이를테면 "나는 숙면을 취한 다음날 아침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일어나는 것이 좋아"같은 말을 나만이 가진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굉장히 비밀스럽다는 듯 표현하는 것을 마주할 때의 느낌이랄까. 아니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그러니까 그것이 어떤 취향을 드러내거나 공감을 통해 상대방과 레포를 형성하기 위함이라면 얼마든지 대화의 소재로 충분한 역할을 할 테지만, 그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격적인 뉘앙스를 풍긴다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말하는 꼴이 무언가 기괴하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상급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불호를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택적으로 불호를 표출한다. 주로 자기보다 어리거나 직급이 낮거나 성격이 온유한 사람들, 그러니까 불호를 표현해도 자기에게 실질적, 정서적 반격을 가하지 못하리라 예상되는 사람들에게만 불호를 표현한다. 이것은 호불호가 심한 것이 아니라 편한 상대에게 불호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즉 갑질에 불과하다. 만일 이들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본인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불호를 과감하게 표출할 수 있다면 그들 스스로에게 명예처럼 부여하는 호불호가 심하다는 말, 인정이다.
진짜 호불호가 심한 사람들은 갑질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 강대한 대상과 싸운다. 권력과 싸우고, 체제와 싸우고, 권위와 싸우고, 권위자와 싸운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두고 호불호가 심하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성격이 모나서 그렇다거나 화가 많아서 그런다거나 삐딱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오히려 자신을 결함투성이 인간인 것처럼 묘사한다. 겸손이 몸에 밴 탓이다. 이들의 겸양은 인사치레가 아니다. 훌륭한 사람들 곁에는 또 다른 훌륭한 사람들이 언제나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주변에 대단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기 정도의 그릇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이라 인식한다. 그래서 그들의 겸손은 허례허식 이라기보다 실제적 인식에 가깝다.
갑질을 하고 있을 뿐이면서 자기 스스로를 호불호가 심한 사람이고, 한번 아니면 아니고 한번 좋으면 끝까지 챙겨준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믿지 말자.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원대한 목적을 위해 자신에게 소중한 어떤 것을 잃을 각오로 결단을 내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자신보다 작고, 싸우기 수월한 것들만을 골라 자기 영향력을 드러내기 때문에 위대해지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타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설 리 만무하다.
진정으로 호불호가 심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 그것은 나보다 강하고 위협적인 대상과 싸울 수 있을 때에서야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호불호가 심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 호불호가 심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정말 멋지게 호불호를 표현하는 사람인지, 그저 갑질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