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고향은

by 정 호

시간이 날 때면 도서관에 간다. 책을 읽거나 일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그 공간의 고요함이 좋아서, 또는 도서관이 뿜어내는 성실하고 차분한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도서관이란 으레 비슷하게 생겼지만 도서관을 가는 길목이라던지, 도서관 한편에 만들어진 이색적인 공간이라던지,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 같은 것들 가운데 가끔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재미를 발견하는 맛에 도시의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만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의 도서관을 찾아갔다. 나의 10대를 담고 있던 그 시절에는 없었던 공간이 새로 생긴 탓에 조금은 낯선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익숙한 것 사이에 피어난 새로운 것은 완전히 낯설기보다 오히려 낯익은 듯한 느낌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을 지그시 바라본다. 지어진 지는 이미 몇 년 된 듯한데, 얼마 전에 방문했을 때는 리모델링 중이라서 잔뜩 움츠려있던 모습과 달리 오늘은 그 입구에서부터 자뭇 당당한 자태가 느껴진다. 1층과 2층, 3층을 찬찬히 살펴보며 요즘 지어지는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도서관은 야외정원이 트렌드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2층 한 구석에 야외정원으로 나가는 조그마한 문이 눈에 들어온다.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행여 누구에게 방해가 될 세라 살포시 문을 열고 야외정원으로 나간다. 은근히 머리칼을 두드리는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살던 동네를 이렇게 약간 높이가 있는 장소에서 훑어본 적이 있었는지 잠시 기억을 더듬는다.


정면으로는 예전에 살던 아파트가 새로 지어진 아파트 기둥에 가려져 겨우 반쯤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20여 년 전이었다면 가려지는 것 없이 아파트의 모습이 모두 보였을 테지만 내가 살았던 오래된 아파트와 도서관 사이에는 신축 아파트들이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지 이미 꽤 시간이 흐른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찾아온 느낌이랄까, 소년 시절 눈에 익혀둔 풍경을 한 곳에 서서 가만히 내려다보니 무언가 가슴이 찌르르한 느낌이 들어 순간 묘한 느낌이 든다.


대로변을 건너 새로 지어진 신축 아파트들보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조금 더 앞에 지어진 3층 높이의 교회였다. 이전에는 없었던 건물들이 새로이 생겨난 모습은 약간의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으나 여전히 그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는 20년 전의 건물들과 뒤섞여 묘한 느낌을 받게 한다. 교회 옆으로 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듯 보이는 말끔하게 주황색 벽돌로 외벽을 마감한 다세대 빌라 5채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그 옆으로는 아직 허물어지지 못한 채 이전 세대의 자태를 유지한 채 버티고 있는 낡은 주택들이 즐비하다. 빨강, 파란색의 슬레이트 지붕은 곧 흘러내리기라도 하려는 듯 가파른 대각의 형태로 겨우 서 있고, 그 위로는 녹슨 쇳물이 빗물과 섞여 아래로 아래로 하강하고 있다. 초록의 페인트를 들이 부운 듯한 2층 주택의 옥상 또한 그 녹진한 색의 강렬함을 뿜어낸다. 주택 사이사이에서 기어코 비집고 나와 하늘에 자신의 존재감라도 과시하려는 듯 솟구쳐 오른 감나무에는 그 노력이 무색하게 고작 여남은 개의 감이 어설프게 매달려 있다. 온갖 건물과 생명들이 강렬한 색감을, 혹은 빛바랜 색과 앙상한 형태를 악착같이 뽐내며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감을 누구라도 알아봐 달라는 듯 무리한 행군을 감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치렁치렁 늘어진 전선 위에는 몇 마리의 참새가 줄지어 앉은 채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며 가만히 나를 응시하다가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획 돌려버리고 만다. 주택의 마당마다 심어진 호박잎과 고추에서는 일종의 다정함이 느껴진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빛바랜 것들이 뿜어내는 황량함과 그렇기에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다정함이 교차한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디야?"

"2층 옥상정원이야"

"나 화장실 가게 3층으로 와 줘"

"지금 올라갈게"


3층에서 아이와 책을 읽고 있던 아내로부터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 짧은 여행을 마무리한다. 우산을 접는다. 미끄러지듯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적당히 따듯하고 후텁지근한 공기를 느끼며 잠시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든다. 다음에 이곳에 올 때는 또 다른 것을 느끼게 되겠지, 언제쯤 오게 될까, 올 일이 있기는 할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내와 아이를 향한 쪽으로 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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