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한테는 저렇게 인사 안 해주고 차별하네

고된 소진의 말들

by 정 호

결핍은 어떤 종류의 불안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갈등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표출된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 모서리는 더욱 뾰족하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나 둘 집으로 향한다. 그중 어느 아이들은 아직 교실에서 나오지 않은 옆 반 친구들을 기다리느라 교실 앞 복도에 줄지어 서 있다. 나뭇잎만 떨어져도 까르르 대는 시절답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희한하게도 교실 안에서보다는 교실 밖에서, 수업이 끝나기 전보다는 수업이 끝난 후에 아이들에게 들이대는 기준의 그물망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책임으로부터 해방 때문일까, 선생이라는 의무감 때문일까, 그렇게 시간과 공간의 압박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진 탓일까, 교실 밖에서 하교하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면 엄근진의 탈을 벗고 조금은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가 많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화장실에 간다. 서늘해진 날씨 탓에 이제는 제법 시리게 느껴지기 시작한 찬물로 손을 씻고 교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마주친 우리 반 학생 둘은 언제나 그렇듯 까르르까르르 흘러넘치는 웃음으로 기분 좋은 백색소음을 만들고 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모르겠지만 괜스레 장난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손에 남아 있는 물방울을 한 방울 튕긴다. 아이들은 그 별 것 아닌 행위조차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깔깔대며 도망치는 시늉을 한다.


10미터 정도 떨어진 복도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우리 반 A는 옆에 서 있던 자신의 친구에게 들으라는 듯, 혹은 혼잣말인 듯 조용히, 하지만 몹시 날이 선 말투로 마치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와~ 나한테는 저렇게 인사도 안 해주고 완전 사람 차별하네"


우리 반 교실까진 20미터 정도, 아이의 곁을 스치기까지는 10미터 정도 남았다. 아이에게 다가서는 10미터의 거리가 100미터는 되는 듯 멀게만 느껴진다. 아직 인사를 할 만큼 가까워진 거리가 아니었음이 분명한데 아이는 왜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평소에 웃으며 인사하고 종종 장난도 잘 쳤으면서 왜 자신을 차별한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동안 나에게 털어놓았던 진심 어린 고민과 그 고민들을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서로의 시간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이제는 이처럼 무심한 태도로 할퀴듯 내뱉는 아이들의 말에 더 이상 아프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다만 애잔할 뿐이다. 그것은 사랑을 갈구하는 포효인 탓이다.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 끊임없이 불안과 싸우고 있는 아이들, 언제나 경계태세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아이들, 그들의 갈망 어린 포효에 나는 고개를 떨군다. 시도 때도 없이 발산되는 애정을 갈구하는 그들의 뿌리를 내가 충분히 적셔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레퍼토리가 예상되는 탓에 이번엔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똑같이 물을 튀기며 인사를 하면 왜 친한 척하냐며 신경질을 낼지도 모른다.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가면 재수 없다고 차별한다고 없는 말을 지어서 퍼뜨리고 다닐지도 모른다. 가볍게 눈을 맞추고 목례만 하고 지나가면 마치 자신이 윗사람이라도 된다는 듯 교사를 무시하려 들지도 모른다. 불과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불필요한 생각을 하느라 심력이 소모된다. 아이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기운을 풍기며 쳐다보지 않는 체하며 나의 반응을 의식한다.


"안녕. 조심히 가"


담담하게, 하지만 애정을 담아, 들뜨지도 침잠하지도 않은 듯한 태도와 목소리로 아이를 잠시 바라보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의 마음에서 불안이 사라지기를, 아이의 행동에서 가시를 거둬내기를 바라며 아이를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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