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교실에서 가끔씩 자기 분노를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다는 듯 포효하는 아이들이 있다. 때로는 분노 때문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못 들었으면 모를까, 이미 듣게 된 이상 가만히 놔둘 수는 없다. 생활지도의 목적은 아이를 혼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갈등상황을 예방하는 데 있다. 화가 나서, 친구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 교사와 기싸움을 하기 위해서 포효하는 아이들, 그들은 관성에 따라 점점 더 크게 울부짖을 것이며 그것은 더 잦은 갈등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가게 될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무례해서, 분위기를 해쳐서가 아니라 아이의 평온한 삶을 위해서 그들은 반드시 행동을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감정을 드러내며 혼내지 않는다.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는다. 정돈된 단어를 고른다.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만 되묻는다. 아이의 감정과 그런 행동을 한 이유에 대해 묻는다. 내 자식이라면 눈을 부라리며 못 배워먹은 짓 다시는 하지 말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교실에서는 감히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이가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게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놔둬서도 안 된다. 분명히 잘못된 행동을 했지만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꾸지람을 할 때 감정을 섞거나 위협적인 표정, 말투, 음정을 사용하지 않고 단호하게 팩트에 근거한 내용만을 전달한다. 이것은 혼내는 것이 아니라 요즘 말로 치면 훈육에 가깝다. 훈육이란 바람직한 행위를 형성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훈육이 잘 안된다. 말귀를 알아듣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어른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아이들은 애초에 교실 안에서 문제상황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훈육이 안된다는 말은 말귀를 못 알아듣거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어른의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십여 년 간의 가정생활을 통해 배움의 과정을 빚어내지 못했음을 뜻한다.
아이들은 혼나지 않고 자란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정도에 차이는 있겠으나 어느 정도 혼날 짓을 하며 자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규율을 익히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배워야 타인과 유능하게 관계를 맺으며 평화롭게 살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혼나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부드럽게 타이르거나 아예 눈을 감는 어른들밖에 없다. 나 역시 그럴 때가 많다. 스스로 어른스럽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욕망보다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될 두려움이 더 큰 탓이다.
나: 교실에서 왜 큰소리로 욕을 하는 거니
학생:....(화가 난다는 듯 째려본다)
나: 선생님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학생: 사물함 닫다가 손이 끼었어요(귀찮다는 듯 옆으로 고개를 돌린다)
나: 사물함 문을 누가 닫았는데?
학생: 저 혼자요.
나: 아프면 복도까지 들릴만한 소리로 욕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학생: 하...(억울하다는 듯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한숨을 쉰다)
나: 지금 자랑스러운 행동을 한 거야 부끄러운 행동을 한 거야?
학생: (점퍼 주머니에 양손을 꽂아 넣고 짝다리를 짚은 상태에서 혀로 한쪽 볼을 민다)
나: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 땐 그냥 주변에 사과를 하면 될 일이다. 그럼 주변사람들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넘길 거야. 그런 태도는 앞으로 너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아.
학생: (억울하다는 듯 갑자기 책상을 치며 자리에 앉아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눈물을 쥐어짠다.)
이 아이는 끝끝내 교사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많다. 본인의 잘못을 인식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것이라면 그나마 발전 가능성이 있겠으나,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이는 아이들도 많다.그리고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부모님에게 전화가 온다.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 났다고 하는데요.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서요.
아 그래요... 아이가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는 안 그랬는데 올해 사춘기가 왔나 봐요.
집에서는 안 그러는데 학교에서만 그러네요.
이 정도면 점잖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요즘 같이 교사를 향해, 학생들 간에,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시대에, 의도와 목적은 충분히 무례하게 느껴지지만 그나마 점잖은 어투를 유지하려 애쓰는 학부모에게 이제는 감사함을 느낄 지경이 되어버린 희한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불안한 부모의 마음,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다는 마음, 나 역시 부모인지라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 어떤 사람도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나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듯, 아이 역시 그런 존재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는 현명한 부모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결코 아이를 알 수 없다. 가정에서의 모습, 학교에서의 모습이 비슷한 아이도 있고 전혀 다른 아이도 있다. 같은 학교 안에서도 학급에 있을 때, 체육 수업을 할 때, 과학 수업을 할 때, 악기를 배울 때, 영어를 배울 때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모둠이 되었을 때,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과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아이들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어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은 간극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다.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모습에서도, 내가 스스로 느끼는 나의 모습에서도, 그 간극 때문에 고뇌하고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존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그러한 간극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간극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아이의 집과 학교에서의 생활 모습이 다른 것, 그것은 그냥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