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노력과 성취를 폄훼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과 맞장구쳐줄 아이들을 항상 대동하여 낄낄대기를 반복하며 누군가의 노력과 성취의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다. 자신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아이를 칭찬하거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기어코 조롱과 멸시의 존재로 전락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이런 아이들은 수업 분위기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열의를 가진 아이들을 주눅 들게 만들고 그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교실에 퍼져 아이들의 적극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타인의 흠을 짚어내거나 때로는 흠이 아닌 것조차 흠인 것처럼 여론 조성하기를 밥 먹듯 하는 아이가 자신에 대한 지적 앞에서는 눈빛이 돌변하고 몹시 분하고 억울하다는 듯 부르르 몸을 떨기도 한다. 그들의 이중잣대를 참아내기가 몹시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그들 역시 교육의 대상인 것을.
일정한 숙련도를 거쳐 패턴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을 두고 우리는 보는 눈이 생긴다고 말한다.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다. 교사의 보는 눈은 아이의 떡잎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다. 될 성 부른 잎과 싹수가 노란 잎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교사들은 제발 자신의 눈이 잘못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싹수가 노란 아이의 파릇한 싹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파릇한 초록의 싹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보통의 경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과거의 아이들이 한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현재의 아이들로 자라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 날에 교사로서 느끼는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콩나물에 물을 주면 티가 안나는 것 같아도 어느 날 보면 쑥쑥 자라 있다는 교육적 언어를 믿으며 살아가려 애쓰면서도 때로는 그것이 압도적으로 무용한 말로써 다가오는 것에 굳이 저항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막아낼 도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