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단하고 근본적인 믿음에 대하여
아들: 부서졌어...
엄마: 괜찮아 다시 조립해 보자.
아들: 안돼.. 어려워 엄마가 해줘.
엄마: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볼까?
아들: 응!
엄마: 아빠한테 가서 아빠~ 사랑해~ 조립 좀 도와줘~라고 말해봐. 그럼 아빠가 와서 도와줄 거야.
아들: 내가 그런 거 안 해도 아빠는 조립해 줘
무한한 신뢰.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닌, 내가 어떤 보상을 준비해두지 않아도 무조건 나를 도와주리라는 무한한 믿음. 자식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믿음, 대한민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온갖 갈등의 근본 원인은 믿음의 부재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믿지 못하고 정치인과 대중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로를 믿지 못한다. 개인 간의 믿음에 대한 노력은 거대한 덩어리 형태의 이미지 속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남녀가 불신하고 청년과 노년이 서로를 힐난하며 교사와 학부모는 서로를 두려워한다. 하나의 거대한 시대적 흐름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불신은 다양한 형태로 확장 전파되며 점점 더 강퍅한 인간을 생성하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그런 세상 속에서 간혹 가뭄에 단비처럼 어떤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잘 해낼 거라고, 그동안 충분히 잘 해왔노라고, 자신의 믿음에 의문을 품지 말라고, 내 삶의 지표를 응원하고 내 삶의 방식을 다듬으려 하지 않는 그들은 무해하며 선량하다. 때로는 그러한 태도가 포교 활동이나 영업 활동처럼 명확한 목적의식 아래에서 집행되는 것을 목도할 때 불신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 더욱 민감하게 세팅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주 가끔 정말로 순수한 믿음 그 자체를 건네려는 무모한 인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자식이다. 자식은 무한히 온정적인 눈빛으로 부모를 바라본다. 믿고, 용서하고, 따르고, 이끈다. 그네들을 두고 부모가 마치 천사 같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그저 귀엽고 어여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끔 진실로 천사가 현현한 것은 아닌가 싶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부모에게 베푸는 진심 어린 사랑과 믿음의 마음, 그리고 그것이 부모에게 끼치는 선한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이들은 정말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기분이 든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무한한 믿음과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한한 믿음이 서로 공명하며 자식과 부모는 가장 완전한 인류 공동체의 초석을 빚어낸다. 가정이 무너지는 세계의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협화음과 도를 넘어서는 갈등은 이미 가정의 불화 속에서 싹트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가화만사성,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셈이다. 가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근본의 믿음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자가 무엇에 대해 논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