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나알 처럼
아들: 아빠 비눗방울이 안 나와
아빠: 그러게 어제까지는 나왔는데. 이런 장난감들은 오래 못 가더라고
아들: 왜?
아빠: 물에 닿아서 그런 것 같은데, 어떤 장난감들은 물에 안 닿아도 금방 고장 나고 그래. 이제 이런 거 사지 말자
아들: 그래도 처음에는 좋았잖아.
세상 좋아졌다. 비눗방울을 힘들게 불며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아도 건전지만 넣어주면 자동으로 비눗방울을 만들어주는 비눗방울총(?) 이야기다. 야외에서 가지고 놀기도 좋지만 아이는 목욕탕에서 가지고 노는 것에 더 관심을 보인다. 매번 놀고 난 뒤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목욕탕 청소를 하느라 또 한 세월 땀 흘리며 물청소를 해야 하지만 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그깟 물청소가 대수인가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런 장난감들은 으레 며칠 못 가 고장 나기 일쑤다. 며칠 못 가 고장 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고장 나서 멈춰버린 장난감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이제 이런 장난감은 사지 말자는 말에 그래도 처음에는 좋았지 않느냐고 받아치는 아이의 말에 또 할 말을 잃는다. 그래 처음에야 좋았지 뭐...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가는 관계, 기름칠을 해보고 건전지를 갈아 끼워봐도 잠시 움찔거릴 뿐 원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고장 난 비눗방울총처럼 서서히 그렇게 꼬꾸라져버리는 관계가 있다. 심지어 그렇게 흘러갈 것이 예견되는 관계의 시작점에서 예상되는 쇠퇴를 대비하지 못하고 그저 그 생성의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 말고 딱히 다른 선택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꿈이나 목표도 그렇다. 처음 성취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희열을 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새로운 권태를 빚어낸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자니 무언가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이의 말대로 그래도 처음 그 순간만큼은 좋았던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것이 삶이 품고 있는 하나의 본질이라면, 쇠락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차라리 기쁨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을, 새로운 기쁨을 품고 있을 또 다른 시작들에 대하여 고민해 보는 편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