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관계 안에서 살고싶은 생의 외침

by 정 호
제목을 보자마자 강렬하게 끌렸다.

내가 평소에 자주 하던 생각과 일치하는 책 제목을 마주했을 때의 그 놀라움과 반가운 감정이란... 흡사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죽마고우를 만난듯한 느낌이랄까. 정말로 반가웠고 이 책의 저자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너무나 궁금했다. 마치 치킨을 앞에 두고 주인이 허락하길 기다리는 강아지의 마음과도 같이 일초라도 빨리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침이 꼴닥꼴딱 넘어갔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 사람을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작가는 삶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랑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인 것 같다. 가끔은 이런 말들이 필요할 거예요 라며 따듯한 말을 건네고 타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어 하는 그런 따듯한 사람. 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싶다고 해서 그저 착하게 굴거나 혹은 의도치 않게 착하게 비치거나 심지어 만만하게 인식되는 것만은 단호하게 거부하며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것은 때로는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하며 어떤 상황에서는 작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마저도 잃게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면서도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사랑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런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한 순간으로
한 사람의 영원을 판단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문장에서 작가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며 가볍게 흐드러져 버리는 우리의 인간관계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동료들 심지어 가족들과도 한 순간의 판단으로 그토록 쉽게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미 여러 번 놀라며 살아왔지 않은가. 이런 숱한 경험을 하며 우리는 관계에 대해 실망하고 그럼에도 관계가 나에게 주는 소속감을 놓을 수 없어서 슬프고도 외로운 외줄 타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외롭고 고독하며 끊임없이 나 혼자 감내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고민 속에서 그래도 관계의 끈을 결국 놓을 수는 없다고 처절하게 외치고 있는 작가를 보며 사람을 놓지 않는, 놓지 못하는 나와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이것은 무언가 많이 결핍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수성은 아닐까. 지치고 힘들지만 끝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태도.


책을 읽다 보면 작가는 무엇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하고 싶다는 것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자 다짐이며 흔들리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올바르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고 세상과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싶다는 작가 자신의 생의 목표일 것이다. 이런 표현에서 나는 작가의 생에 대한 의지를 보았고 어떻게 해서든 삶을 살아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열망을 느꼈다.


또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이 점이 참으로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만족과 감동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 내렸다.

"만족이 기대한 만큼 받게 됐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라면,
감동은 기대 이상으로 생각지 못한 것을
받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떤 계기로 작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머리를 탁 치며 공감하게 하는 문장들을 볼 때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우리들은 각자 살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어떤 단어나 존재에 대해 그저 막연하고 어렴풋한 느낌과 감각으로 수많은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허나 이렇게 자신만의 언어로 어떤 존재나 단어에 대해 명확히 정의를 내리는 일은 결코 흔치 않고 쉽지 않다.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이라는 티브이 프로에서 "작가란 언어를 수집하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렇듯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존재에 대해 정의 내리는 행위는 삶과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니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성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 자체, 그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사람에게, 사물에게, 생명을 갖지 않은 존재에게조차 이렇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무척 상승하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생명이 없었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 구절에서도 같은 마음을 살펴볼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존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으며 부지불식간에 생명을 거두어들이고 있을까? 반대로 우리는 누구에 의해 존재가 규정되고 있으며 관계에 의한 실존이 부정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결국 삶이란 사랑과 사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는 책 표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당신 곁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사람 때문에 상처 받았지만 사람 덕분에 웃을 수 있었던 어떤 날,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여기에서 당신이란 작가가 알고 지내며 개인적으로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들일 수도,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우리들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져 애틋하고도 기특하게 느껴졌다. 결국 작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외치며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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