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힘
노자는 무위의 정치를 말했다. 이는 최고의 정치란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을 알 뿐 통치자가 실제로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채로 모든 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즉, 누구도 불편함이나 어긋남을 느끼지 않도록 매끄럽게 작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실제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여기에서 비롯되는 한 가지 개념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알아서 살피는 "배려"의 마음이 상대로 하여금 최상의 편안함을 누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운전석에 앉아 직접 운전할 때와 보조석에 앉아 타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갈 때 우리는 전혀 다른 감각으로 상황을 지각한다. 직접 운전을 할 때는 오감을 총 동원해 운전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것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자, 목적지에 빠르고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함이며, 동승자의 안락함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촉이 서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차량의 움직임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이런 일련의 과정은 운전자의 감각센서를 최대한 사용하게끔 만들어 피로감을 유발한다. 이와 반대로 뒷자리에 앉는 순간 우리는 운전에 필요한 감각센서를 차단한다. 이는 피로감을 덜어주지만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움직임에도 멀미나 쏠림같이 기분이 나빠질만한 상황에 노출되기도 한다.
"코너링이 참 훌륭하시네요"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은 벤츠 S클래스 뒷좌석에 앉아 운전기사 송강호의 운전실력에 찬사를 보낸다. 기생충이 개봉했을 당시, 친구 차를 얻어 탈 기회가 있을 때면 농담 삼아 한 번씩 따라 했던 기억이 난다. 가속과 감속이 부드러워 미처 속도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곡선구간을 휘돌아 나갈 때조차 차량의 롤링을 느끼지 못해 직선구간으로 착각한다거나 이강인의 순두부 터치 같은 발놀림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반동 없이 스르르륵 차가 멈추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운전자의 그 세심함에 감탄과 찬탄을 동시에 내뱉는다. 이는 아주 기분 좋은 감정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배려받았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가속과 감속의 배려심을 통해 충격을 최소화시킬 줄 아는 사람들은 노자의 무위의 정치를 실로 실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배려가 몸에 익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난폭운전 하는 택시를 타본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타인의 무배려함에 온몸이 휘청거리는 경험이 얼마나 불쾌한 것인지 금세 떠올릴 수 있다. 그들의 생각 없는 말 한마디, 생각 없는 몸짓, 눈짓, 어휘, 어투, 무지성적이고 무배려한 삶을 살아온 흔적을 관찰하게 될 때 소름 끼치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아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고 싶다.
"응~ 너는 몰라도 돼"
50이라는 나이는 적은 나이일까 많은 나이일까, 60이면 장수했다고 환갑잔치를 하던 시대의 30세와 백세 인생을 노래하는 현대의 50세는 사회적, 정신적으로 같은 성숙도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50이 그렇게 많은 나이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50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 그렇다고 한다면 50이 넘은 한 사람이 띠동갑도 더 되는 까마득한 후배의 질문에 저리 대답하는 것은 무배려를 넘어 인격적 미성숙함을 드러내는 무지의 소치로밖에 볼 수 없다.
무례와 친근함은 한 끗 차이다. 개그맨들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때로는 개그를 성공시키지만 때로는 도가 지나쳤다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니 그 위태로운 줄타기에 목숨을 걸어야 할 테지만 일반인이 굳이 그런 위태로움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유머와 무례를 분간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들이, 배려를 알아차릴 줄 아는 섬세한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