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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25. 2021

요즘은 무엇이 눈에 들어오나요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쏟고 있다는 증거  

결혼을 하고 첫 직장에 정식 발령을 받으며 내 인생 첫 번째 자동차를 구입했다. 그전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차에 전혀 관심 없는 삶을 살아왔었고 첫 차를 구입할 때에도 차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터라 자동차가 부여하는 가치와 편의사양, 가족 구성원의 니즈나 쓰임새와 같이 차를 구입할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측면을 살피기보다는, 그저 가용할 수 있는 범위의 비용 안에 들어오는 suv 자동차, 그리고 실제로 그런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튼튼하다는 이미지가 박혀있는 자동차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코란도를 구입했다.


데 자동차를 사서 타고 다니다 보니, 그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코란도가 그렇게 눈에 많이 띌 수가 없었다. 아니! 이렇게 코란도가 많았단 말인가? 하지만 자동차 판매 순위를 살펴보면 쌍용은 현대 기아에 밀릴 뿐만 아니라 벤츠나 BMW 아우디와 같은 외제차의 판매량에도 밀리는 수준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현대 기아 벤츠 비엠 아우디가 눈에 더 많이 띄면 많이 띄었지 쌍용 코란도가 눈에 많이 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내 눈은 다른 자동차들은 자동 필터링을 하고 유독 코란도만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일까. 다른 이유가 있을까?


그저 그것이 내 것이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많다는 것을 판단하지 못할 만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사람의 인식능력은 객관적인 지표와는 별개로 작동될 때가 많다. 내가 가진 것이 좋아 보이고,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것이나 나와 어떠한 형태로든 관계가 맺어진 것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인간 지각 능력의 기본 작동원리인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 인간은 나와 비슷한 것, 내가 아는 것을 더 쉽게 발견한다는 말과 같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무수히 많다. 음식에 취미를 가지고 직접 이것저것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그 전에는 그저 풀과 고기로 구분되던 식재료들이 좀 더 세부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전에는 관심 없던 요리 프로그램에서 채널을 멈추고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신기한 조리법이 나오면 감탄을 내뱉기도 한다.


저가의 코트만 구입해서 입다가 값이 꽤 나가는 코트를 몇 벌 구입하여 입어보니 자연스레 옷감의 종류와 혼합 비율에 따라 어떤 형태와 재질과 느낌을 내는지 알게 되었다. 큰 비용이 지출될수록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자신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고 합리화를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공부를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보는 눈이 생긴다는 것은 꼭 소비적인 측면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글이 눈에 들어올 것이며 유치원 선생님이 꿈인 사람은 TV에 나오는 유치원 선생님들에 관한 뉴스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다. 건물주가 꿈인 사람에겐 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올 것이고 머리를 잘라야 하는 사람의 눈에는 무수히 많은 미용실이 보여 어디서 머리를 잘라야 하는지 한참 동안 고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의도치 않게 마음을 빼앗겼거나, 의도적으로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말과 같다. 어떤 대상에 한 번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은 세월이 흐르더라도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어 남아있게 될 기억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쌓는 일이 바로 취향을 구축하고 추억을 품고 연륜이 스미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들도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을 남들도 관심 있어할 거야.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눈에 담고 살아가고 있으면서 때때로 자신의 눈에 담긴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담겨 있을 거라 착각한다. 여기서 균열이 발생한다. 지식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필연적으로 타인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쌓여 앞으로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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