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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un 25. 2020

우리는 경험한 만큼 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것만이 나의 세상을 구성한다.

네가 보여준 것은 사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구속이라 부르고 있었구나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을 활용하여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방식의 심리검사 방법이 있다. 착시현상 역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사람마다 특정 대상을 달리 본다는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은 같은 것을 두고 다르게 바라보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한다.


  A4용지 한 장을 가로로 눕혀놓고 반으로 똑 접은 뒤 한쪽은 파란색으로 한쪽은 회색빛이 도는 아이보리 색으로 칠해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을 보고 한 사람은 바다라고 말을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시골집의 철로 만들어진 대문이라고 답을 하였다.


왜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대장금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를 바꾸어 "그냥 그렇게 보였으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한 것인데 왜 그렇게 보이느냐 물어보시면..."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머리로 복잡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그렇게 바라본 것이 아니라 보는 즉시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보이는 것에서 왜 사람마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아마도 개인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은 아닐까

 

피아제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 동화와 조절을 이야기했다. 외부에서 새로운 지식을 접할 때 기존의 나의 지식과 경험(스키마)에 맞추어 해석을 하는 것을 동화라고 이야기하였고 외부의 새로운 지식이 나의 기존 지식과 경험에 맞지 않을 때 나의 지식을 재조정하는 것을 조절이라 정의하였다. 조절보다는 동화가 더 쉬운 방식이기에 아마도 우리는 동화, 즉 내 경험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 같다.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위의 사례를 다시 생각해보자.


위에서 말한 A4용지를 보고 비슷한 색감이나 패턴을 가진 시골집 문을 본 경험이 있었던 사람은 시골집 대문이라 대답을 하였을 것이다. 본인의 경험에 새로운 정보를 연결시킨 것이다. 바다로 봤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몇 가지 색의 그라데이션이나 색감의 경계를 바다에서 아마 보았던 것일테다. 그러면서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비행기를 타봤으면 내가 왜 이렇게 답을 했는지 알 것 아니야!"라고 설명을 할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그 장면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렇다. 경험은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고 있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는 것이, 해본 것이, 봤던 것이, 먹어본 것이, 우리가 경험해본 것들이 다양하고 깊을수록 우리는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다. 똑같은 그림을 보고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영화에서 흘러나와 스쳐 지나가는 한 줄의 대사를 듣고도, 친구들과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 속에서 조차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린다.


경험은 삶의 농도를 진하게 해준다.


즐거움도, 행복함도 보다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삶의 농도가 진하다는 것은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보통 사람보다 더욱 절절하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일까지 깊은 공감을 하며 나의 일인 것처럼 함께 슬퍼할지도 모른다. 혹은 나의 일처럼 발 벗고 뛰어들어 타인의 인생에 관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힘든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는 족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깊은 공감 능력을 체득한 사람만이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극심한 가난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눈물 젖은 빵의 의미에 대해서 깊이 공감할 수 있고, 고된 노동자의 삶을 최소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본 사람만이 전태일 평전의 의미를 곱씹으며 읽어낼 수 있다. 빈곤문제,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 삶을 바쳤던 적극적인 활동가들이나 위대한 문학적 작품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면 비극적 경험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것은 모두 경험만이 잉태할 수 있는 소중한 인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경험하고, 체험하여 우리의 감각을 넓혀가야 한다. 그것이 나와 세상 모두에 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험은 마치 현미경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우리는 매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불어오는 한 점 바람에게까지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음악, 음식, 물건, 상황, 우주의 생성원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생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왜 이렇게 같은 것을 봐도 생각이 다를까?"를 애써 고민하기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고민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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