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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Sep 10. 2020

이루지 못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

자이가닉 효과.

완성되지 못한 것은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승리의 경험은 가슴에 남아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제공해주고 패배의 경험은 머리에 남아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각기 가치롭다고 할 수 있다.


한데 실수, 실패, 혹은 미완성과 같은 것들이 승리, 성취, 완성 같은 것보다 우리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는 이유는 그것이 생존의 욕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완성시키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서 물러섰던 경험은 생존을 위협하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생존을 돕고자 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의해 머릿속에 강력하게 각인되는 결과를 빚어낸다.


<자이가닉 효과>
미완성된 과제에 관한 기억이
완성시킨 과제의 기억보다 더욱 강하게 남아 이후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심리적 현상


즉 미완성에 대한 애착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완성을 실패의 경험으로 치부하여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가장 긍정적인 쓰임새 가운데 하나로 도전의식을 고취시킨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 건 승자는 패자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패자는 언제고 승자에게 다시 도전할 투지를 불태우며 그날이 오기만을 곱씹고 또 곱씹는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강한 기억과 열망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이다.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을 일부러 극적이게 꾸며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을 자이가닉 효과를 상업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미완성의 결말이 사람들의 머리에 오랫동안 남게 되고 이것은 후속 작품에 대한 충성 고객을 유치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상업적인 측면에서 언제고 전략적으로 사용되는 기본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예술계에서 한 가지 사례를 더 찾아본다면 모나리자를 떠올릴 수 있다. 모나리자의 눈썹이 없는 이유를 자이가닉 효과로 설명하자면 미완성이 주는 각인 효과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뇌에 강력하게 저장시켜 사람들에게 결코 잊힐 수 없는 효과를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았을 때 심리학은 활용의 범위가 매우 넓으며 부지불식간에 이미 우리 주변에서 전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업에 종사하고 있건, 심리학을 공부해두면 표면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파악해 내는데 분명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멋들어지게 완성시킬 때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완성된 채로 남겨두는 경우가 아마도 더 많지 않을까? 완성시키지 못한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남겨두고 떠난다고 해서 원망과 미련만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오래도록 기억에 담아두며 다음에 있을 새로운 완성을 위한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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