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무너졌다

by 선홍


이것은 은유나 상징이 아니다.

진짜 물리적으로 시댁이 무너졌었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 되었지만 그때의 충격이란.


'콘크리트유토피아'를 보는데 갑자기 그때의 과거가 떠올랐다. 아파트들이 무너지고 길이 꺼지는 아포칼립스 장면에서 말이다.

물론 달랑 한옥 한 채의 붕괴이긴 했지만 심적인 충격은 도시가 무너진 것에 버금갔었다.


워킹맘이라 아이 둘을 시댁에 맡겨놓고 주말에 데려가는 상태였고, 시아버지는 돌아가셨기에 그야말로 연약한 노약자뿐이었던 상황.


아찔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너무 놀라 일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달려갔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재난지역 뉴스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참혹하게 무너져버린 보금자리.



40년이 지난 한옥이었다.

시골 외할머니집보다 불편한 한옥이 서울에 이렇게 많은 줄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넓진 않지만 양옥집에서 자란 내겐 신선한 충격.

신혼 때는 시댁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 추운 겨울엔 나가기 싫어서 방광이 터질 때까지 참았었다.

부엌도 외부에 있어 드나들다 머리를 부딪기 일쑤, 그때마다 이 결혼 물려 말아?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불편해, 불편불편.... 프로불만러가 되어가다가 서서히 낡은 한옥의 좋은 점도 알게 되었다.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알 수 없는 아파트와는 달리, 계절의 변화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작은 마당에선 전 부치고, 김장을 해도 얼룩이나 냄새 걱정이 없었다.


'응답하라 1988'처럼 동네 할머니들이 사랑방모양 시어머니집에 매일 놀러 오시기에 어머니에게 응급상황이 생겨도 누군가는 알려주었다.

손자손녀들을 키우는 할머니들은 서로의 자손들 끼니를 해결해 주었다. 드라마처럼 찐 옥수수를 나눠주면 찐 고구마가 답례로 돌아왔다.


불편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낡은 한옥은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퇴근 후 시댁에 들를 때, 한옥골목에서 시어머니가 끓이시는 김치찌개 냄새를 맡으면 일하느라 날카로웠던 신경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어린 시절 아이로 돌아간듯한 묘한 기분.

한겨울 한옥의 온돌로 등을 지지면 마사지라도 받는 기분이 들었고.


불편하다고 바로바로 없애버리고 편리함을 택하는 대신, 계절이 바뀌는지, 이웃은 누군지 모르고, 집이 주는 정서도 잃어버리며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프랑스에서 100년도 넘어 고장 나는 엘리베이터를 가진 불편한 아파트를 없애지 않고 비싼 월세를 지불하면서까지 사는 걸 이해 못 했는데, 오래된 것이 주는 가치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100년도 못 되어 무너져버린 한옥은 지금은 재개발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한옥골목에 항상 나와 앉아계시던 이웃집 호호할머니,

집집마다 내놓은 커다란 화분들,

골목을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퇴근 후엔 서로 건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