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필이 지닌 소멸성에 주목한다...
시간의 파도에 떠밀리면서 조금씩 소멸한다는 점에서
연필의 생애는 인간의 삶과 묘하게 닮았다...'
책 <보편의 단어> 속에서 삶의 무상함을 연필이란 평범한 사물을 통해 잘 표현한 글이다.
삶의 의미나 꿈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다, 다람쥐나 토끼가 도토리, 풀 뜯어먹으면서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먹냐, 그냥 사는 거지,라는 법륜스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인간인데 뭔가 다른 게 있지 않겠어?라고 반발하지만 오히려 그 생각 때문에 삶이 피곤한지도 모르겠다. 그냥 사는 거라고 하니 부담이 사라지고 마음도 편해진다.
위암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시작한 시기에 돌아가셔 버린 엄마의 방을 치우려고 들어갔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엄마가 돌아가셨단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옆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나오실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엄마가 입원하기 직전까지 먹고 바른 약들이 뒹굴고 있는 걸 보는 순간 '아... 진짜 안 계시는구나...'하고 실감했다.
살기 위해 노력했을 엄마가 그 알약들 속에 있었다. 의지가 강했던 엄마는 그 방에서 갑자기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식을 잘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사는 나도 언젠가 소멸할 것이다. 그러니까 허무한 게 아니라 삶에 감사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
알면서도 삶에 치여 그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