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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명품백을 만드는 여자

- 1일1드로잉100 (15)

by 선홍


더운 여름,

선글라스에 흰 장갑을 끼고

양산까지 든 할머니들이 괴기스럽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도 그러고 다니더라.

나이 들면 호환마마보다 자외선이 더 무서워.

느는 건 주름과 주근깨뿐.

피부가 탱탱 할 땐 그마저도 예뻐 보이지만 이젠 할머니들을 이해하게 돼. 장갑만 안 꼈지 여름엔 중무장.


에어컨 세면 몸이 아프단 말도 이해하게 됐어. 겉옷도 하나 챙겨.

땀나니까 닦을 손수건, 휴지, 손풍기 넣고,

장시간 외출 시 덧바를 자외선 차단제 필수이고.


이게 기본, 진짜 중요한 물티슈, 핸드폰, 지갑 등등이 추가되기 시작하지.

아이고, 그러니 손바닥만 한 예쁜 핸드백을 어떻게 가지고 다니냐고, 장난하나?

재작년, 작년초반 까지도 미니백 열풍 속에 힘들었지만 툭하면 어깨가 뭉치니 빅백도 힘들어.


어쩌라고? 내가 원하는 사이즈, 내가 만들면 되지!

뜨개 가방 우스워보여도 돈 주고 사려면 5~10만 원은 줘야 해.


진짜 핸드메이드, 장인 (장인=나)이 한 땀 한 땀 만든 가방이라고.


툭하면 바늘코 잘못 엮고, 실 풀다 꼬이고, 머리 쥐 나고...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엉덩이 땀띠 나게 뜨다 보면 어느새 완성!

글 쓰는 과정과 비슷해 더 취향저격이야.


오래 뜨고 나면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잘못됐나 싶을 통증이 며칠이나 가지만 완성품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돈만 주면 핸드메이드 같은 공산품을 얼마든지 살 수 있지만 내 손으로 실용품을, 그것도 고가의 명품백과 대적하는 가치를 생산한 것 같아 뿌듯해.

자본주의의 노예에서 잠시 해방된 기분도 들고.


지갑, 가구를 만들던지 그림을 그리던지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머릿속이 텅 비는 몰입의 순간이 와.

자주 경험해 보길 추천할게.


사람이 착해져. 응,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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