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우릴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

by 선홍


오늘이 만우절이다. 요즘 대학생들은 만우절에 ‘라떼’엔 안 하던 재밌는 짓(?)을 하더구나.

작년 대학 캠퍼스 내에 있는 카페에서 작업 후 나왔을 때, 고등학생들이 엄청 많아 놀랐던 적이 있어. 캠퍼스 투어 한다고 보기엔 어중간한 시기였고, 교복들도 다양해서 무슨 일인지 궁금했었는데 그날이 만우절이었던 모양.

대학생들이 각자 다녔던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이디어가 참 좋다고 생각했었어. 나도 해보고 싶었는 걸.


작년까지만 해도 수험생 신분이라 퉁퉁부은 눈으로 아침 일찍 일어난 후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러 가던 네가 고등학교 교복을 찾느라 신이 난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만우절 거짓말 같다. 교복을 다 버린 걸 알고 남동생 교복과 사복을 짜깁기해 입고 나가는 널 보니 묘한 뭉클함이 느껴졌어.


어린 널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던 초반의 가슴 저린 느낌이 아니라 다닌 지 좀 지나고 난 시기, 어린이집 가방을 메고 혼자 씩씩하게 뛰어가던 네 뒷모습이 떠올랐거든. 새로운 출발, 새로운 사회에 발을 내딛는 모습이 비슷하게 겹쳐지는 걸까.

친구들과 사진 찍겠다는 일념으로 수업이 없는데도 굳이 먼 대학교까지 교복을 입고 가는 널 보며 서울대생들도 참 사소한 짓에 목숨 거는구나 싶어 귀엽고도 어이없더라.


재수학원 말곤 고등학교 때 제대로 학원을 다녀본 경험이 별로 없는 네가 어떻게 어려운 관문을 넘어섰을까 생각해 본 적 있어? 난 한 가지가 떠올랐는데, 모두가 알지만 크게 노력하지 않는 것, 바로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 네 생각은 어때?


학부모 노릇에 불성실한 엄마가 한 가지 도움 준 것이 있다면 책과 카페를 좋아하다 보니 어린 너와 자주 돌아다녔었던 거야. 거길 가면 심심하니까 책 하나라도 꺼내보고, 별 부담 없이 독서를 했잖아.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카페 등등.

물론 어릴 때 비해 중, 고등학생이 되더니 책과 절연한 친구사이처럼 돼버렸지만.

결국 공부는 독해력이 아닌가 싶어. 국어고 수학이고 간에 문맥과 문맥 사이의 의미, 논리적 연결 등을 생각하게 하는 시작이 독서 같거든.


2022년 불수능의 첫 번째 국어시험 시간에 수험생들 멘털이 많이 흔들렸잖아. 듣도 보도 못한 ‘헤겔’이 튀어나오질 않나, 첫 번째 과목을 망쳤다 싶으면 의욕이 상실되기 마련인데 네가 그나마 잘 넘긴 것도 어린 시절의 독서 덕분이 아닌가 해.

너무 비약이 심할 수도 있지만 디테일한 분석을 하기엔 내 분석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직감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보통 정답이잖아 선생님도 네가 독서를 많이 한 것 같다고 칭찬하셨다면서.


유치원, 초등학생 때의 독서가 학원 다니는 것보다 중요한 것 같다. 학원이란 게 아무래도 능동적으로 임하기엔 숙제 따위도 있고, 귀찮은 느낌 아니냐. 그에 비해 서점에서 직접 고른 책을 읽는 행위는 능동적이라 지켜보는 입장도 흐뭇해지거든.


이상한 일은 네가 ‘마법천자문’이란 만화책을 너무 좋아해서 나오길 고대하다가 꼬박꼬박 신간을 사댔건만 한문은 왜 이리 약한 것이냐. 만화는 만화일 뿐, 재밌으면 됐지!라고 하면 할 말 없다. 책 읽는데 재미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니까.


어릴 때 네가 특히 좋아했던 책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너도 보이니?’라는 시리즈는 화려한 실사 사진에 숨겨진 물건 찾는 재미에 시리즈로 다 샀었잖아.

‘100층짜리 집’도 떠오른다. 그림도 예쁘고, 각 층마다 사는 동물들보다 보면 100층까지 가게 되는 재밌는 책이었어. 지금도 인기 있는 듯 ‘지하’, ‘바다’, ‘숲 속’ 등으로 확장되었더라. 이젠 네 아이가 읽게 될까?


‘우리 엄마’ 같은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책도 그림체가 따뜻하고 이야기가 재밌어 여러 권 사줬었던 기억이 나.

김영진이란 작가분의 책들도 기억나지?. ‘지하철을 타고서’,’ 집안 치우기’ 등 현실과 맞닿는 아이들의 고민이 공감되고, 재밌었잖아. 너는 ‘제로니모의 환상 모험’이란 시리즈의 책도 참 좋아했었어.


우리의 한때를 판타지와 공감과 재미로 채워줬던 책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네. 서점에서 동화책 고르는 순간이 참 즐거웠었어. 종류도 다양하고, 그림도 예뻐서 보고 있으면 우울함이 가신달까. 어른에게도 ‘동화책 테라피’가 필요한지도 몰라.


지금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린 책들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길 빌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이젠 같이 동화책 읽을 날은 오지 않겠지. 언제 이렇게 커 버린 것이냐…

너의 어린 시절은 워킹맘이던 나에겐 전투 같기만 했는데, 지나고 보니 다 아쉽고 소중하다.


할 일 되게 없고 심심한 날이 생기거든 같이 서점 가서 동화책 구경이나 하자. 싫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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