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홍 Nov 27. 2024

13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3)


7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2)               

부장기자는 다행히 애교 부리는 마담에게 정신이 팔려 우리 따위는 잊은 듯 보였다. 내가 ‘우욱!’ 하면서 술에 취한 척하자 현팀장이 자신도 비틀대면서 집에 가야겠다고 일어섰다.

부장기자도 꽤 취했는지 귀찮은 듯 손만 훼훼 저었는데.

입구까지 배웅해 주겠다며 남기자가 따라 나왔는데, 나는 취한 연기를 그만둔 채 현팀장을 부축했다.      


“죄송합니다.”     


나에게 뜬금없이 말하는 남기자를 놀라 쳐다보자     


“아, 진짜 왜 저러시는지 모르겠어요...”


라며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나는 도리어 대신 사과하는 남기자가 불쌍해 보였는데.      


“남기자님도 힘드...”     


내가 말하는 순간, 현팀장이 남기자의 뒷통수를 세게 가격했다!      


“야! 니들은 왜 어린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냐, 엉! 너도 저럴 거지!”     


나는 술에 취해 마구 삿대질을 하는 현팀장을 뜯어 말리며 남기자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와중에 남기자가 택시를 잡아줘서 겨우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     


여긴 어디지?!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순간 숙취로 인한 두통과 바짝바짝 마른 입 때문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보니 침대 위에 이불을 둘러쓴 채 누워있는 존재가 하나 보였다. 당황해 천천히 이불을 벗겨보니 현팀장이었다! 그제야 어제 택시를 탄 후 너무 늦어 같이 현팀장의 집으로 온 기억이 떠올랐는데.     

어젯밤 택시 안. 현팀장은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눈이 풀린 상태에서도 마구 훈계했다.       


“나도 신입 때 다 겪었던 일이야! 바보같이 왜 참고 있어? 그런다고 회사가 너한테 고마워할 거 같애? 널 지킬 수 있는 건 너뿐이라고!”


말을 끝내자마자 의식을 잃은 듯 눈을 감는 현팀장.      

엉망진창인 우리 집과는 달리 정리벽이 있는 듯 회사에서처럼 잘 정돈한 현팀장의 오피스텔 내부를 멍하니 둘러보았다. 시계를 본 나는 깜짝 놀라 현팀장을 흔들어 깨웠다.      


“팀장님, 팀장님!”

“으응...으으...”     


인상을 찌푸리며 겨우 눈을 뜬 현팀장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니가 왜 우리 집에 있어?!”

“팀장님이 데리고 왔잖아요.”

“내가?”      


현팀장은 초점 없는 눈으로 날 보다가 역시 벌떡 일어났고, 숙취 때문에 머리 아파 인상을 확 찡그렸다. 시계를 본 현팀장은 나처럼 깜짝 서둘러댔다.      


“야, 늦었다!”      


화장실로 정신없이 뛰어가는 현팀장. 나는 싱크대로 가서 물을 틀어놓은 후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기 시작했는데.     


*     


“월급 받아서 택시비로 다 날린다니까!”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회사 안 계단 위를 육상선수처럼 성큼성큼 뛰어 올라갔다. 속이 너무 울렁거렸다.

겉으론 쌀쌀맞아 보이고 혼만 내는 상사인 줄 알았는데, 술자리에서 나를 위해 보여준 태도는 너무 따뜻했다. 현팀장을 보며 미소 짓자 “뭐, 왜?”라며 숙취로 인해 인상을 찡그렸다.      


해장국 사드릴게요!”      


현팀장에게 소리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대표실로 들어가는 백영석을 발견했다!

저 인간이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마구 뛴 데다 숙취와 경계심 때문에 속이 더욱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물을 계속 들이키며 정신없이 홍보 기사를 썼다. 현팀장에게 쓴 걸 보여주면 빨간펜으로 휙휙 긋거나 수정해서 다시 되돌아오는 지겨운 과정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이때 홍감독이 홍보실 안으로 들어왔다. <더 키친> 시나리오를 고치느라 그동안 보이지 않았었는데. 흥분한 얼굴로 내게 다가오더니     


“장대표님이 시나리오를 투자사한테 보여줬대요.”     


라고 속삭였다. 정말요? 내가 좋아하자     


“쓸데없는 기대는 마세요. 앞으로 까이는 게 일상일 테니까.”     


엿들은 현팀장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아 진짜 기운 빠지게... 오늘 투자사쪽 사람 왔다던데, 이유 알아요?”      


홍감독이 흥분을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이때 백영석이 홍보실 안으로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느낀 내가 벌떡 일어났는데.      


“안녕하세요. 다들 이른 점심 어때요?”      


백영석이 묻자 현팀장은 귀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바로 그러자고 했다.      


“해장하고 싶은데... 국밥 아니면 싫어요.”     


백영석이 국밥을 싫어하는 걸 알고 일부러 강조했다. 그가  순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그러자고 답했는데.      


“선지해장국 어때요? 신선한 선지가 가득-한 걸로.”     


솔직히 나도 잘 못 먹는 국밥을 얘기하자 백영석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졌다.      


“아, 저긴 <더 키친>을 쓰신 홍민호 조감독님, 이쪽은 ‘시네마펀치’ 백팀장이세요.”     


현팀장이 두 사람을 소개시키자 백팀장의 얼굴에 의례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아아, 시나리오 잘 봤습니다. 재밌었어요.”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홍감독이 손을 내밀자 잡는 척만 하는 백팀장. ‘어디 조감독 따위가 비벼?’ 라고 속으로 생각할 인간이었다.       


“감독님도 같이 가시죠?”      


내가 홍감독에게 묻자 당황하는 백팀장이었지만 NO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러자고 권유를 하긴 하는데 누가봐도 진심이 아니었다. .     


*      


내 말대로 신선한 선지가 가득한 해장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해장이 급한 대로 나와 현팀장은 국물만 정신없이 흡입하는데, 백팀장은 냄새조차 별로인지 코를 막았다.      


“백팀장님, 해장국 싫어하세요?”      


내가 천연덕스럽게 묻자 절대 아니라는데. 홍감독은 대낮부터 소주 한 병을 시킨 후 맛있게 먹는 중이었다.


“조감독님 어제도 술 드셨죠?”

“시나리오 쓸 때 낙이라곤 혼자 술 마실 때 뿐이니까...”

“그러다 알콜 중독자되겠어요. 가끔 같이 마셔줄까요?”

“좋죠!”


홍감독이 얄미운 듯 쳐다보는 백팀장은 국물만 몇 번 떠먹어 보더니 숟가락을 도로 내려놨다.      


“두 분이 친하신가 보네?”

“술꾼들끼리 친한 거죠.”      


현팀장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백팀장.     


“술 잘 드세요?”

“그럼요! 완전 말술이에요.”     


백영석이 술 잘 마시는 여자를 싫어하는 걸 알고 부풀려서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팀장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12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