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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Nov 29. 2024

14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4)


“백팀장님, 귀하게 크셨죠?”   

   

현팀장이 해장국을 안 먹는 그에게 물었다.   

  


“어머니가 음식을 엄청 잘하세요. 내 입맛에 맞는 것만 만들어 주시니까 다른 걸 먹어볼 기회가 적었어요.”

“만두를 특히 잘 만드시죠.”     


내가 툭 내뱉은 말에 다들 깜짝 놀라 날 쳐다봤다. 나도 놀라고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아 씨, 이 말을 왜 뱉었지?’       

“어떻게 아세요?!”      


백팀장이 눈을 똑바로 뜬 채 물었다.      


“아니, 요리 잘하는 엄마들은 만두를 잘 만들잖아요.”      


그런가...? 다들 의아해하자 당황한 난 뚝배기 안에 있는 선지를 홍감독에게 덜어주었다.      


“감독님, 많이 드세요.” 


백팀장은 우리 둘을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홍감독에게 질문했다.      


“조감독님 시나리오 대사가 아주 생생하던데... 연애 경험이 많으신가 봐요?” 

“네? 그렇진 않은데...” 

“그럼 어떻게 여자들 취재를 하신 거예요?” 

“소개에 소개를 받아서 술 사주고 밥 사주면서 취재했죠.”

“그중에 실제로 사귄 분도 있을 거 아녜요?” 

“내 연예가 궁금하신 건가?”      


홍감독이 살짝 기분 나쁜 듯 답하자      


“그런 건 두분이서 술 마시면서 하시죠.”      


내가 대화를 차단시키려고 했다. 그러자 백팀장이 이번엔 나에게 질문했다.     


“회사에서 <더 키친>을 지지한 사람은 진미래씨 뿐이라던데... 진짜예요?”      


나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키친> 대표님께 보여드릴지 말지 고민 중인데... 차 한잔하면서 시나리오에 대해 느낀 장점 얘기해 줄 수 있어요?”      


현팀장이 질문하자 소름이 쫙 끼쳤다. 둘만? 

만일 <더 키친>에 투자사가 관심만 보이면 제작의 문턱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나는 <더 키친>의 존망이 나한테 걸린 것 같은 책임감을 느꼈다.       


“제가 말씀드릴게요.”      


홍감독이 당황해 말하자      


“조감독님 의견은 객관적이지 않잖아요.” 


라고 잘라 버렸다. 백영석은 자신이 가진 권력이 쌀 한 톨 정도라도 한 톨 이상의 권력을 행사할 인간이었다. 너 같은 인간은 내가 상대하는 게 낫지.      


“좋아요. 대신에 낼 팀장님 회사로 찾아갈게요. 오늘은 제가 바쁘거든요.”  

“우리 회사요?”      


현팀장이 다소 실망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그럴 필요 있어? <더 키친> PD도 아니고.”     


현팀장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물었다.      


‘있어요, 백영석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거든요.’       

“아직 PD도 없으니까 저라도 도와야죠. 흥행할 작품을 위해서라면!” 

“체, 잠잘 시간도 없는 주제에...”      


현팀장이 어이가 없는 듯 말했다.      


*     


백영석이 일하는 회사는 충무로에 있는 우리 회사와 달리 강남 한복판의 빌딩 안에 있었다. 우리 회사는 칙칙한 복도와 무질서한 내부를 자랑했고, 그나마 룸이라곤 대표실과 홍보실뿐이었다. 제작팀 인원이 제일 많아 넓은 로비 같은 공간에 여기저기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네마펀치’는 회전문으로 된 입구로 들어서면 깨끗한 엘리베이터가 있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투자사로 들어가는 자동문이 보였다. 

투자사 안으로 들어서자 일렬로 잘 정돈된 부스들이 펼쳐졌다. ‘배급팀’, ‘해외 세일즈팀’, ‘대표실’, ‘본부장실’, 그리고 백영석이 일하는 ‘제작투자팀’이 보였다. 직원들이 바쁘게 오고 가느라 내 존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때 셔츠의 팔 부분을 걷은 백영석이 나를 발견하더니 자기쪽으로 오라 손짓했다. 왠지 혼자 적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는데.     

‘제작투자팀’ 안으로 들어가자 비싸 보이는 책상과 의자 세트가 두 개 있었고, 정중앙에 거대한 회의 테이블이 있었다. 두 사람만 일하기엔 지나치게 넓어 보였는데. 

백영석의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범생이처럼 생겨선 아주 싹싹했다.      


“첨 뵙겠습니다. 조대리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웃으며 그와 인사를 나눴다. 백영석과 둘만 있지 않아 내심 다행이었는데.  

놀랍게도 커피믹스가 아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내주었다. 백영석과 조대리를 마주보고 앉는 자리로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     


“진미래씨는 PD가 되고 싶은 겁니까?”      


다짜고짜 백영석이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이었다.      


“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홍보가 영화의 끝이라면 사실 영화의 시작에 관심이 많아요.”

”시작이라면...?“      


조대리도 궁금한 듯 물었다.      


”아이템을 기획하고 시나리오 만드는 일. 캐스팅과 투자까지 해서 영화가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일. 이후 제작 현장은 제작PD에게 넘기면 되고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는 그런 부서가 없어요.“ 


내가 아쉬운 듯 말하자 백영석과 조대리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 팀이 그런 일을 하거든요.”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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