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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홍 Dec 08. 2024

시어머니의 촌스러운 가정식 <마음이 양념, 김장김치>


몇 년 전부터 시댁에서 김장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에헤라디야~허리디스크가 있는 제게 김장은 너무 고된 노동이었던 터라 쾌재를 불렀죠.


정확히 개량해서 만들어파는 맛있는 김치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김장을 한단 말입니까.

한꺼번에 많이 만든 김장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넣어둬도 양이 너무 많아서 당최 줄어들질 않아요. 그러다 맛과 색이 변하는 건 물론이고요.


그때그때 먹을 만큼만 신선한 김치를 사서 먹자, 대기업, 중기업, 소기업, 시장이든 어디든 개의치 자, 가 제 생각이었습니다.

재료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노동량까지 따지면 사 먹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그랬는데 희한하게도 김장철만 되면 여럿이 모여 만들었던 김장김치 생각이 난단 말입니다.


 달큼하고 매운 김치를 쭉쭉 찢어 갓 삶아  따끈따끈한 수육과 막걸리를 곁들여먹던 기억, 신선한 생굴과 겉절이를 먹던 기억, 어머님이 된장 풀어 푹 고와 흐물흐물해진 배춧국 생각에 침이 고입니다.  

김장철만 되면 며칠 동안 수육을 삶아 겉절이와 계속 먹어댔습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죠.

편리함대신 환상의 맛을 잃어버렸습니다.

원래 김치보다 빵을 좋아하는 빵순인데도 그 맛을 알고 나니 잊기가 힘듭니다.



역시나 주말엔 시댁에 갔습니다.

시어머니 혼자 딸랑무 김치를 한 대야 해놓고 가져가라 하십니다.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없어요. 다른 자식들 줄 것도 만드시겠죠.


하지만 속으론  김장김치가 한통 생겨 기뻤습니다. 왠지 어머님이 만드신 게 더 맛있게 느껴지거든요. 좋은 재료와 정성이 더해져서 그럴까요?

거기에 어머님의 지인이 김장김치를 한통 갖고 왔다며 그것도 덜어가라 하십니다. 이게 웬 횡재?


김치통을 들어본 사람은 알 겁니다. 절여진 배추에 양념액이 들어찬 김치통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런데 그 무거운 김치통을 시어머님께 갖고 왔다는 지인분의 마음도 놀라웠어요.


"친구야, 내가 맛있는 김치 담갔어. 한번 먹어볼래? 호잇차!"


그런 마음이 이해되시나요? 저라면 팔이 빠질까 봐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인분의 마음 덕분에 우리들까지 맛있는 한 끼를 할 수 있었습니다. 칼국수를 보글보글 끓여 김장김치와 곁들여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런 엄마가 돼줄 자신이 없어 의기소침하기도 했었는데요. 

음식을 사주던, 만들어주던 자식과 주변 생각을 하는 엄마 마음만 있다면  춥고 각박한 세상도 살만하다고 느껴집니다. 


엄마들이 있어서 세상이 살만 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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