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학교 근처에 살면 영원한 젊음

by 선홍


대학가 근처에 살면 축제기간을 저절로 알게 되고,

입학과 졸업, 방학시즌에 예민해집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진다고 할까요?


3월이 되면 겨울잠 자던 곰이 표효하듯 갑자기 대학가가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여유 있는 공간을 자랑하던 카페들 자리가 없어지고, 겨울 동안 한산하던 식당이 북적거리죠.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의 식당가 골목은 사람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할 정도가 됩니다.

훨씬 좁고 불편해지지만 젊음이 넘실거리니 저까지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요즘 축제기간이라 대학 안은 다양한 외국음식을 파는 푸드트럭들이 가득하고, 길바닥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사 먹는 청춘들의 웃음소리가 낭랑합니다.


금요일 밤에는 '작작 좀 처마시지!' 하며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는 무리들을 자주 목격하게 되죠. 좋을 때다, 속으로 생각하며 요리조리 샥샥 피해 다닙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여름 방학이 됩니다. 벌써? 하는 느낌이죠. 그 많던 사람들이 더위를 피해 고향으로, 고국으로 다 돌아가버렸나 싶게 갑자기 한산해지는데요.


방학이 되면 내 세상이 됩니다. 고요해진 교정과 주변 식당가를 내 집 정원처럼 거닐 수 있기 때문에.

평소의 어마어마한 소란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침묵은 한층 더 고요하고 묵직하게 느껴집니다.


학교 내 카페에 가서 팔아줄 타이밍은 바로 이때죠.

남는 자리도 많고 저렴한 커피값,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혼카페족에겐 아주 훌륭한 장소가 됩니다.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여름보다 밀가루처럼 흰 눈에 뒤덮인 겨울방학 때가 더 좋아요.

뽀도독뽀도독... 눈 밟는 소리가 귀에 온전히 들릴 정도로 조용한 시간.


적막한 고요로 가득하던 겨울의 교정이 학생들로 잠시 북적일 때가 있는데, 바로 졸업시즌입니다.


학사모와 가운, 정장을 한껏 빼입은 졸업생들이 사진 찍느라 난리가 납니다. 요즘은 사진전문가들과 웨딩사진 찍듯이 교정을 도는 패키지가 있나 봐요.

아직 사회에 정식으로 발을 내딛지 않은 청춘의 순수한 기대감과 희망이 풍선처럼 부풀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저 나이 때 가장 열정 많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저도 왠지 뭉클해집니다.

청춘들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펼쳐지길 기원하며 교정을 산책합니다.


20대 때는 프랑스 같은 먼 외국으로 떠나 사진작가가 되어 자유연애하는 삶을 꿈꿨었죠.


이젠 그 기억도 희미해졌고, 서울에서 가정을 이뤄 붙박이장처럼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살아보니 붙박이의 삶도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아요.

계획을 암만 세워봤자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더 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몇 번 겪고 나면 금세 1년이 흘러가버리죠. 저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또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이 들어오겠죠.

대학교 안은 영원한 젊음입니다.


카페 드로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빵 찾아 '리틀 프레스트'부터 '긴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