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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거리두기 중입니다

by 선홍


남편한테 마음이 확 상했습니다.

나를 무시하고, 내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났죠. 살아온 세월만큼 쌓여온 것이 폭발하는 느낌.

뭔가 내 안의 어떤 연약한 끈이 툭, 끊어지는 느낌.

의외로 그 연약한 끈이 받치고 있었던 것이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나 싶을 만큼 의미 있었던 무엇이 끊어지는.


꼴도 보기 싫어서 피하다 보니 코로나 때보다 더 완벽하게 '거리두기'를 하게 됐습니다.

한주, 두 주, 세 주... 이러다 남처럼 살아도 살겠구나, 쇼윈도부부란게 이런 건가 생각하게 됐죠.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대화만 주고받았어요.

끈이 끊어지자 항아리 속에 꾹꾹 눌러뒀던 미움이란 감정이 풀려나와 마음껏 활개를 치네요. 덩치를 마구마구 불려 나가더라고요.


그러던 중 평범한 아침 한 끼를 먹다가 급체했어요. 역류성 식도염 같기도 하고. 아침부터 미운 사람 얼굴을 보다가 그만.

평상시 팔팔한 저답지 않게 이틀을 몸져눕고 말았어요.

아무것도 못 먹다시피 한 채 이불 밖은 위험한 상태로.


시어머니를 못 뵈러 가게 돼서 전화를 드렸더니 걱정하시길래 매실진액이나 좀 덜어달라고 했습니다. 음식을 못 먹으니 따뜻한 매실차 생각이 그리 나드라고요.

애들이 시댁에 갓다온 후 제게 5만 원을 내밀었습니다.

엄마 죽 사 먹으라고 할머니가 줬어,라며.

아, 내 생각해 주는 사람은 시어머니뿐인가요...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어요. 부모님 말고 내 걱정하면서 용돈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다 생각했는데 시어머니가 계셨네요.


남편은 미운데 시어머니 때문에 또 열심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 깜빡하신 거 같은데... 제가 부탁드린 건 매실진액이었는데... 지금 당장 마시고 싶은데!

어머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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