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빈에서 600원 아끼려다 6000원어치 잃은 것

by 선홍


친구와 약속 있는 토요일, 1시간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가까운 '커피빈'이 보이자 '차이라떼'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얼굴이 떨어져 나갈 만큼 추웠거든요. 차이라떼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이국적인 차향이 코끝을 스치고, 우유거품이 입술에 닿은 것 같았죠.


카페 키오스크로 가서 7000원이라는 가격을 본 순간, '너무 비싼데?'라는 생각에 멈칫했습니다. 언제 이렇게 올랐지?

고민하던 손가락이 미끄러지더니 갑자기 '바닐라라떼'를 고르는 게 아닙니까.

그것은 내 의지라기보다 오랜 시간 길들여진 '가성비'의 본능이었습니다.


바닐라라떼는 600원이 더 쌌지만 선택 후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나는 600원을 아낀 게 아니라 기분전환할 기회를 놓친 게 아닐까'하는 생각.

전체적인 행복지수보다 눈앞의 숫자를 줄이는데 집착했을 때 느껴지는 결핍감을 느꼈어요.


먼저 '가심비'측면에서 보죠.

7,000원짜리 차이라떼가 주는 만족도가 100이고, 6,400원짜리 바닐라라떼의 만족도가 50이라면, 겨우 10%의 금액을 아끼려다 50%의 행복을 포기한 셈이 됩니다.

고작 커피 한잔이 아닐 겁니다. 의식주를 포함한 전반에서 가성비만 추구한다면 '취향의 종말'을 맞게 될지도 몰라요.

모두의 집에 같은 브랜드만 있다면 얼마나 우울할까요.


다음으로 '나를 대접하는 태도'의 측면에서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겨우 600원 때문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참아야 하는 존재인가?"라는 무의식적인 자기 비하가 듭니다. '취향존중'이 자존감을 지켜주기도 하잖아요.


마지막으로 고작 600원을 아끼기 위해 뇌를 풀가동하며 갈등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낭비'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에너지를 쓰다가 지쳐 보상심리로 6만 원짜리 쇼핑을 하게 된다면요?


"600원도 못 참아서 무슨 큰돈을 모으겠니? 절약은 습관이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서도.


어쩌면 부자가 되는 법은 600원을 아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600원을 더 썼을 때 내 생산성과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계산할 줄 아는 '안목'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색과 낭비 사이에서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지혜가 아직도 부족한 것 같네요.

600원을 아끼려다 이런 성찰을 하게 됐으니 역시 아끼길 잘한 걸까요?


드로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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