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먹히지 않는 법

by 선홍

늘 불안을 달고 살았다.


회사 다닐 때 토요일은 잠깐 행복했다가 일요일이 되면 불안해졌다. 늦잠 자다 지각하진 않을지, 회의 준비 다 못했는데 낼 마무리할 수 있을지, 만나기 불편한 상대와의 미팅은 잘 흘러갈지, 월요 주간회의 때 발표할 내용 중에 트집 잡힐 만한 것은 없는지, 애가 아픈 건 나아질지 등등 불안 때문에 끝도 없이 생각이 이어졌어.

물론 잠도 쉽게 들 수 없었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꿈에서조차 어딘가를 바쁘게 헤매고 다니는 통에 피곤하기만 했고.


나이를 먹는 것 중에 좋은 점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것이다. 겪어보니 내가 불안하게 생각했던 일들은 실제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일어난다 해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도대체 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리면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생각해봤어.


첫째는 갑작스럽게 닥쳐올 재해, 동물들의 습격에 대비하라는 원시인 조상의 유전자 때문이겠지. 그 불안 덕분에 폭우에 휩 쓸려가거나 사자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


두 번째는 현실을 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의 어리석은 실패, 오지도 않은 미래의 걱정에 뒷덜미를 잡혀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닥치면 고민하고 해내면 되는 것을, 과거와 미래에 정신이 팔려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 불교에서 현재를 살라는 가르침이 그래서 중요하고, 어려운 거겠지.


세 번째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역경을 버텨왔으니 다음에도 잘할 것이라고 믿으면 되는데도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성취욕이 강하기 때문이다. 성취욕이 무슨 문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취욕만큼 중요한 성장동력도 없는데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란 책에 하버드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의 말이 나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거라고 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반대로 기대의 좌절에 따른 위험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더 심각해졌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뿐이고, 그것도 무시무시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재, 만인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노력해서 부를 얻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능하다는 인식이 생겨버렸다. 부모가 부자인 사람과 고아인 사람은 시작선부터가 다른데,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또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의 성공은 축하해주지만 비슷해 보이는 지인의 성공은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린 성취욕을 가지고 열심히 달리지만 실제로는 현재와 별로 달라지지 않는데서 계속 불안한 게 아닐까.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고도 말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매사 긍정적으로 보는 태도가 왜 중요한지 알겠지?


이렇게 말하는 나도 그러기는커녕, 자존심을 걸고 성취하려고 매일 애쓰며 산다. 노력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최근에야 받아들이는 중이다. 쇼펜하우어는 "체념은 삶이라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다."라고 말했어. 대단한 철학자도 체념하는데, 내가 뭐라고 하면 다 된다는 오만한 착각을 헸는지.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마는 거지, 자책하거나 실패에 연연하지 말자. 불안에 뒷덜미를 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매거진의 이전글남보다 자신에게 더 관대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