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돌아왔습니다.
25번째인지 26번째인지, 많아진 나이만큼이나 계산하기 복잡해집니다.
손이 큰 시어머님덕에 명절전날 전 부치느라 기름탕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은 이제 추억이 되고 있네요.
잘 가라, 흐흐흐... 원수를 단칼에 처리한 살수처럼 속 시원한 기분인데, 뭔가가 찜찜합니다. 영화 보면 죽은 줄 알았는데 뭔 하찮은 이유로 계속 살아나는 주연처럼 살아 돌아올까 봐.
명절 전 증후군을 오래 앓아온 탓인지 전날 그래서 기분이 굉장히 다운되고 불안해요. 거동 불편한 시어머님이 손 놓고 계시질 않고 혼자 뭘 하실까 봐, 명절날 좁은 집에 복닥거릴 식구들 사이에서 앉을 곳도 없이 기 빨릴까 봐 미리 걱정하기 등등.
설 당일 세수만 겨우 한 채 이른 아침 시댁에 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의 불길한 예감은 맞았어요.
명절 때마다 음식을 산더미처럼 하시는 시어머니 흉을 보면서 같이 의기투합했었던 형님의 배신이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고추전, 동태 전, 나물, 더덕무침, 진미채 등등 아주버니, 가까이 사는 시누이까지 동원해 이것저것 요것조것을 준비해 오신 거죠.
빈손으로 간 저는 면목없어 긁적긁적,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배신이다, 하는 헛소리를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해왔다지만 음식 해본 사람들은 알죠. 재료사러가고 다듬고, 만들고, 가져오고,, 일이 산더미, 어휴, 이럴 거면 각자 나눠서 해오자고 했죠.
명절날 대식구들의 하루 세끼를 집에서만 차려먹는 집이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우리 시댁요.
하루 종일 상 차리고 치우고 설거지를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얼마나 긴지 체감하게 됩니다. 옛날에는 명절 때 이랬대~책에서나 읽게 될 현장에 있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그때가 좋았지, 하고 느끼게 되겠죠. 살아보니 그랬으니까요.
알면서도 힘들고, 동시에 복작복작 수다 떨고 고스톱 치는 재미도 느낍니다.
형님에게 담에는 음식해오지 말라고 하면서 냠냠짭짭 후루룩 맛있게 먹었습니다.
형님이 저 같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기분 좋은 명절 되셨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