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처럼 세상을 바쁘게 굴러다니다 보니 엄마와의 만남이 점점 힘들어졌다. 결혼하고 나면 내 가족을 건사하기에도 바빠 친정엄마와의 시간은 뒤로 미뤄지기 일쑤였고, 엄마는 내가 잘살기를 바라기에 자신이 뒷전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셨다.
시댁은 유독 제사를 중시하는 분위기인지라 명절 전 부치기, 만두 빚기, 송편 만들기 등등을 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자라면서 설거지도 제대로 해 본 적 없었던 난 연습도 없이 실전에 바로 투입된 초짜 권투선수처럼 제사 준비할 때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그럴 때마다 지방에 사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았고, 그런 후엔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애 키우랴 회사 다니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딸의 처지를 잘 알기에 한번 내려오라는 말도 잘하지 못하셨다.
이러다 영영 모녀관계가 소원해질 것 같다는 걱정을 할 무렵, 엄마는 나와의 해외여행을 제안했다. 저질체력인 난 빡빡한 일상을 뒤로 한채 엄마랑 달랑 둘이서 떠나는 여행의 준비를 혼자 다 해야 하는 것이 부담백배였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이렇게라도 딸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바쁜 삶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겨우 긁어낸 시간을 모아 떠난 여행들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주었다.
우린 낯선 곳을 갔을 때 명소들은 뒤로 한채 '아무 버스나 타고 가는데 까지 가보기'같은 무모한 이벤트를 즐겼었다.
스페인에서도 그랬고, 스위스, 북유럽에서도 그랬다. 예상치 못한 장소와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에 얼마나 설레는지 모른다.
집시가 많아 소매치기 천국인 스페인에 내려 첫 지하철을 탔을 때 하필이면 퇴근시간에 걸려 아수라장, 엄마는 수상한 여자들에게 즉각 둘러싸였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강력한 복대의 힘을 믿었던 엄마이기에.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었는데, 각자 덩치만 한 백팩을 멘 채 힘겨운 여행을 했었더랬다. 그때 20대인 나보다 힘이 세고 건강했던 엄마는 타이레놀을 입에 달고 버티던 나와는 달리, 숙소에 도착하면 무슨 힘이 남아도는지 손빨래까지 다하곤 하셨다.
이제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픈 엄마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어떤 여행의 기억은 놀라우리만치 세세하게 기억하지만 어떤 기억은 뭉텅이로 잘려나가 버렸다
엄마의 걷는 속도는 90에서 50, 30으로 줄더니 이젠 5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존심 세고 힘이 넘쳤던 엄마의 몸은 뼈만 남은 듯 앙상해졌지만 여전히 딸이 모든 일을 뒤로한 채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염려하셨다.
그렇게 항상 뒷전이었던 엄마와의 만남은 갑자기 끝이 나려 한다. 엄마의 의식은 고통을 뒤로한 채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버린 듯하다.
어제 전화라도 할걸, 한번 더 찾아뵐 걸 후회할 시간에 당장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 한다. 보고싶은 마음을 전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