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똥 된다

by 선홍


또 냉장고에서 곰팡이 핀 음식을 발견했다. 동대문 중앙아시아 거리에 있는 슈퍼에서 샀던 리투아니아산 치즈. 맛이 꽤 괜찮아 한잔씩 마시는 와인과 같이 먹었는데, 아껴 먹으려다 보관해둔 걸 깜빡한 것이다. 먹고 싶은 걸 참았다가 신선한 상태를 놓쳐버린 치즈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은 물론이고, 비싼 명품 화장품 샘플을 아껴뒀다가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샘플들을 우르르 발견했을 때, 너무 예뻐서 아껴 사용했던 은제품 액세서리들이 검게 변해버린 걸 발견했을 때, 마음에 드는 그릇을 사놓고 아끼느라 정작 적재적소에 쓰지도 못했을 때 등등 어리석다 싶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물론 욕망을 바로바로 푸는 것보다 뒤로 미루는 태도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려고 덤벼들었다간 좋은 성적도, 괜찮은 인간관계도 갖기 어려울 테니. 한데 나이 들면서 느끼는 점은 모든 것을 참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보류하는 태도'는 맞지 않다.


물건, 사람, 심지어 마음까지도 '온타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필요해서 산 물건은 나중을 위해 아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써줘야 물건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

물건들에게 생각이 있다면 냉장고나 어두운 서랍장에서 서서히 썩다가 잊히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한 평에 몇 천만 원하는 서울 집값인데 제 소임을 못하는 물건들로까지 공간을 채우는 것은 참 어리석지 않니?


바로바로 사용하고, 잘 버려야 잘 산다. 이건 내가 그렇지 못하기에 나에게도 하는 잔소리다.


인간관계도 그렇잖아, 보고 싶으면 바로 연락해서 보면 되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는 바람에 놓쳐버린 인연들도 꽤 된다. 만남을 미루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 시국'을 맞이하는 바람에 또 몇 년이 지나버려 끊어진 인연들.

내 체력도, 에너지도 아끼다 똥 된다는 생각이 든다.

반백살이 되니 등과 어깨, 허리까지 예상치 못했던 통증들이 생긴다. 열심히 살았기에 생기는 통증들인데, 아프다 보니 몸을 사리게 되더라. 그렇게 신나던 쇼핑도 이젠 체력이 안 따라주니 피곤해진다. 자연적으로 몸의 에너지를 아끼려고 덜 걷고, 사람도 덜 만나려 하게 된다. 그러니 더더욱 매사에 신이 나지 않을 수밖에.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몸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인지 농부인 외할아버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이 들 때까지 열심히 일하는 노인들이 장수하는 걸 알고 있니? 농사짓는 일은 육체적 노동 강도가 아주 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자기 먹거리를 해결하는 삶, 매일 힘들지만 할 일이 있는 삶이 사람을 살게 한다.

그러니 아끼지 말고 열심히 현재를 살자. 아플까 봐 몸 아끼면서 늙어가느니 땀 흘리며 뛰는 삶을 택하겠다.

자꾸 지치고 주저앉고 싶어지는 나에게 너도 이런 잔소리를 해주길 바란다. 아끼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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