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얘기를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있니?
이런 얘기를 하면 상대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둘이 나눈 대화가 새어나갈 위험은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상대에게 끊임없이 감사해하고, 내 곁을 떠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라. 그런 믿을 수 있는 상대는 대부분 가까이에 있어서 평소엔 그 소중함을 망각하기가 쉬워.
인간이 덜 된 나의 욕심과 질투, 이기심, 그리고 누추한 내 삶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부처이고 예수다. 그런 상대가 많다고 답한다면 그건 거짓이다. 진실로 속마음을 나누는 상대가 맞는지 의심해볼 지경이다. 그만큼 그런 상대는 만나기가 귀하다.
나에게도 그런 상대가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있었다. 그 상대는 바로 엄마였고, 얼마 전에 병으로 잃고 말았다.
인생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런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배신감에 치를 털 때마다 전화를 걸었다.
물론 엄마라고 듣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때로는 주변 지인들의 자기 마음 같지 않은 행동을 흉보고, 배신에 속상해하셨다. 엄마는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서로의 '대나무 숲'이었던 셈이다.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전화로 소통해야 했고, 그런 점에서 더욱 솔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 가까운 곳에 살았다면 오히려 더 솔직할 수 없었을 테다.
얼마 전 예상치 못한 엄마의 병으로 나만의 소중한 '대나무 숲'을 잃고 말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었던 '대나무 숲'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화병에 안 걸리고 살 수 있었으므로 어찌 보면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상실을 겪은 후 처음에는 '이를 어쩌지...?' 당황스럽고 황망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구멍이 뚫려 스산한 바람이 휘휘 헤집고 다니는 듯 휑한 기분이 들었다. 노래 가사처럼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고, 화도 나지 않았다. 평소 예민하던 감각들이 녹슬고, 둔해져 버렸다.
이래선 안되지... 나를 일으키기 위해 걷고 달렸다. 그러다 '아이유'의 신나는 곡인 '좋은 날'을 듣는데 눈물이 울컥 솟았다. 그거 아니? 우울할 땐 노래가 신이 날수록 더욱 슬프다는 거.
좋은 날들이 이렇게 많은데, 소중한 '대나무 숲'이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니... 더 이상 시시콜콜한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게 됐다니...
내 작은 성공에도 크게 기뻐하는 유일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반백살의 나이에도 엄마에게 쪼르르 전화해 자랑하고 싶은 어린 딸이고 싶었나 보다.
이젠 내가 너의 '대나무 숲'이 되려 한다.
예민한 편이라 평소 스트레스가 많기에 들어만 주는 '대숲'은 아닐 것이다. 제 얘기를 더 많이 하는 이상한 상대일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인 너의 '대나무 숲'이 되고 싶다. 살면서 너와 많은 것을 나누고, 느끼고 싶다.
내가 받은 사랑이 그러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