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덜 벌어도 살 수 있는 법

by 선홍

앞서 얼마를 버는 것보다 얼마를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영화사 기획개발팀을 책임지던 시절에 꽤 괜찮은 월급을 받았지만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지출했기에 늘 돈이 부족한 느낌에 시달렸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 프리랜서로 수입이 불안정한 삶을 살면서 부족한 느낌은 그대로지만 그렇다고 더욱 불안하진 않다.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지 트렌드에 관심이 많고, 뒤처지기 싫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사야 했다. 헤어나 손톱 관리도 틈틈이 받았고, 유행하는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비싼 물건에는 관심이 없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통일된 - 가방, 옷, 액세서리, 신발의 디자인이나 칼라가 - 느낌이 들지 않으면 외출이 꺼려졌다. 세일 기간에 뭐 하나 건지지 않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통장의 잔고를 보면 견딜 수가 없는 사람처럼 소비를 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죽어라고 달리지만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기분이 들 때마다, 텅 빈 기분이 들 때마다 더욱 쇼핑을 했다. 자기가 열심히 번 돈으로 소비하는 일이 무슨 문제냐고? 물론 나쁜 건 아니지. 번 돈을 틀어쥐고만 있는 것보다 소비를 하면 경제가 활성화되기도 하니까. 문제는 쇼핑 후에 충만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많이 입지도 않은 옷들이 유행에서 뒤처진다는 이유로 옷장에 유배되어 버린다. 나는 옷들을 유배당한 기억도 잊은 채 비슷한 옷을 사고 만다. 옷장 안엔 켜켜이 쌓인 옷무덤이 높아만가고, 주인에게 버림받은 서러운 옷들이 원한을 품는다. 새로운 옷을 사지만 원한품은 옷들의 텃세로 집안에 들일 자리가 없다. 난 아까운 지난 옷을 버리지도 못하고, 새 옷에게 제대로 된 자리도 만들어 주지 못한 채 눈치만 본다. 무서운 본처와 질투 많은 첩 사이에서 새우등 터진 꼴이다. 그래서 옷장을 열기가 더욱 두려워진다...

이게 무슨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욕구를 컨트롤하지 못해 쇼핑으로 힐링하길 바란 대가가 이리도 혹독하다. 거기에다 제로에 가까운 통장 잔고까지 덤으로 얻게 되면 쇼핑은 그야말로 두통과 스트레스의 원흉이 된다. 옷뿐만 아니라 집을 삼킬 것처럼 많아지는 책들도 같은 문제를 일으켰다.

힘들 때마다 날 위로해주던 애인이나 절친이 알고 보니 날 제거할 목적으로 접근했다더라, 는 통속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삶의 활력이 될 수 있는 쇼핑을 이렇게 만들어서야 되겠니.


그러니 일단 옷장을 열어라. 식은땀 흘릴 각오를 단단히 한 후 옷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라.


멀쩡한데도 처박혀 있었던 옷에게 자기 소임을 다할 기쁨을, 다른 이에게 가면 더 잘 쓰일 옷에게는 입양을, 걸레로도 쓰이지 못할 옷에게는 죽음을 선사해라.

그런 시간을 갖다 보면 무심코 한 쇼핑으로 인해 신음하는 옷들의 무덤과 좁아터진 아파트로 인해 낭비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깨닫고 소름이 끼칠 정도다.

쇼핑을 하지 말란 것이 아니라 빈 공간이 생겨날 때 새 옷을 살 고민을 하면 좋다.

이런 작은 시도, 사실은 정말 하기 싫지만 하기만 하면 뭔가에 쫓기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통장에 조금씩 늘어나는 숫자를 보는 기쁨이 뭔지도 알게 된다. 카드 청구서가 날아와도 성적표를 받는 것처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지출하는 것이 옷이나 책 정도겠니, 물가가 상승하는 요즘 입맛은 고급화되는데 식료품 값도 만만찮고, 자식 대학 등록금, 학원비까지 허리가 휜다.

억대를 버는 사람도 늘 돈이 부족하다고 하더라. 외제차를 타고, 해마다 외국의 고급 휴양지를 가고, 아이를 외국 유학 보내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많이 벌어도 부족한 느낌에 시달린다면 변화를 시도해야겠지.

패스트 패션으로 인해 좋은 옷을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시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에 먹거리가 당도하는 택배 천국에 살수록 정신줄을 잡지 않으면 훅 가는 수가 있다. 점점 편해질수록 더욱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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