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유능할수록 나는 무능해진다

by 선홍


요즘 로맨스 사극에 푹 빠졌다.


이메일도, 문자도, 편지도 보내기 쉽지 않은 시대에 연모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어려움, 남녀가 유별하기에 더욱더 애타는 마음, 그럼에도 신분 차이를 극복한 사랑 등 요즘 시대와는 다른 꾸덕하고 애절한 사랑이 가슴에 절절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권력을 둘러싼 왕과 신하 간의 암투, 치열한 정치 등이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되는 재미까지 있다.


여러 명작들 중 '옷소매 붉은 끝동'이라는 드라마를 여러 번 정주행 했더랬다.

정조와 의빈 성씨 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사극 로맨스로 여전히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인기 많고 능력 뛰어난 정조가 두 번이나 성덕임이라는 일개 궁녀에게 차였다가 세 번째에 프러포즈에 성공했다고 하니 이미 흥미진진하지 않니.


기록을 찾아보면 정조는 외모도 괜찮았고, 성군으로써 부족함이 없는 자질과 뛰어난 활 솜씨까지 갖춘 그야말로 '엄친아'였는데 그런 왕을 궁녀 주제에 왜 거절했을까 궁금해졌다.


성덕임은 정조와 이미 결혼한 정실 왕후에게 후손이 없다는 이유로 프러포즈를 거절했다고 하나 승은을 입은 궁녀들의 삶이 비극으로 끝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궁녀도 엄연한 직업이고, 직업여성으로서 당당하고 살고 싶었던 여인이 왕의 여자가 되는 순간 궁 안에 갇혀 잃어버리게 될 자유를 염려했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을까. 똑똑한 그녀는 왕관을 쓰는 자가 지게 될 무게를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왕과 결혼하면 규율과 법도에 얽매여 모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며 늘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후손을 낳는 일이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중요한 사명이 되어 여러 명의 후궁을 거느릴 수 있는 왕께서 언제 한번 찾아와 승은을 주실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게 된다.


명예와 돈이 아무리 좋다 하나 화려한 감옥 같은 궁에 갇혀 궁중의 암투에 시달리면서 딸보다 아들을 낳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여하튼 프로 궁녀로서 최선을 다하는 성덕임을 보면서 궁녀도 어엿한 워킹우먼이었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되었는데.


워킹맘으로 살면서 느낀 것은 남편이 뛰어날수록 상대적으로 힘을 덜 쓰게 된다는 점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남편이 승승장구하며 돈을 잘 벌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치사한 일을 당할 때 쉽게 그만둬 버릴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반대로 남편이 회사에서 잘리자 내가 다니는 회사의 구조조정 시기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더라. 당연하겠지. 그렇게 안간힘을 쓸수록 내 생존력도 높아졌다.

먹고사는 일이 원래 구차하고, 치사스럽고, 고통스럽기에 도망갈 구멍이 보이면 도망가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거기다 뛰어난 남편을 만나면 주변 어른들도 힘들게 왜 돈을 버냐, 살림이나 잘하지, 애나 잘 키우지 하는 소리들을 하신다. 반대로 남편이 돈을 못 벌면 돈 버는 며느리, 아내가 인정받고 살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냐고? 요즘은 아끼며 사는 게 미덕인 시대가 아니라 소비하고 빚도 재산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주식이니 코인,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면 상대적으로 돈 때문에 불안해진다.

돈이 없다고 신혼살림을 반지하나 주택에서 시작하고 싶은 요즘 세대들은 없을 것이다. 차라리 결혼을 안 하고 말지. 그러니 남편감을 고를 때도 아파트 한 채는 구할 수 있는지 따지게 되지 않겠니.


난 네가 남편감을 볼 때 조건이나 능력을 너무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할 때 조건 좋았던 사람이 몇십 년 같이 사는 동안 계속 잘 나간다는 보장이 없고, 그 조건이 사라져 버리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겠니? 가치가 없어진 물건 취급하듯이 하면 나 또한 그런 대접을 받을 날이 온다.


남편이 실직하면 살아남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지 않게 되더라. 능력 있는 남편에게 기대 살 생각보다 너 자신에게 투자하길 빈다. 그 투자야 말로 손해 나지 않는 현명한 투자라고 생각해.


영화 같은 일이 생겨 최고로 능력 있고 돈 많은 왕이나 대기업 회장이 너에게 푹 빠져 남편으로 맞는 행운을 가졌다고 치자. 시간이 지날수록 행운이 아니라 대단한 집안일수록 그 집안의 종살이를 할 수밖에 없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잖니.



그러니 우리 자신을 믿고, 능력에 투자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자. 알았지?














시중드는 사람 궁녀를 워킹우먼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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