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대차게 까였다

by 선홍

어느 날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얘기 듣고 싶지 않아."

학교, 학원 갔다 돌아온 고2 아들에게 9시쯤 저녁을 차려준 날에 들은 말이었다. 그동안 참아왔다며 노려보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거대한 돌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여자인 난 엄마임에도 상처받고 마음이 상했다.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네가 하는 얘기는 시시하고 재미없으니 입 좀 다물고 있어 줄래?라는 말을 듣는 기분.

귀엽게 재잘거리던 아들의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나로선 이 녀석이 그 아이와 같은 사람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쌍팔년도 대사가 튀어나오려는 순간,대단히 어떻게 키워준게 없음을 깨닫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 와중에 정말 잘한 일이었다. 휴우.



혼자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어 종일 사람이라곤 저녁에 돌아온 아들이 '첫 사람'인 날이 대부분이었다. 반가운 심정으로 밥 먹는 동안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을 나누고 싶어 하다 갑자기 펀치를 맞은 것이다.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냥 흘려듣고 있으면 될 것을 저리 말하나 싶었다. 엄마 얘기 궁금하지 않다며 선 그은 채 밥만 퍼먹는 아들내미를 보며 안면근육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워킹맘이라 주말이면 아들과 헤어져야 했던 순간 따라가겠다고 울던 아이는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아들은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은 흔적조차 없는 듯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때의 미안함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어리석게도 나 혼자 과거에 연연하던 셈이었다.

번데기가 아니라 날갯짓을 준비하는 나비가 된 것을 '차갑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달라진 상대의 마음도 모른 채 옛사랑만 나열하며 그때처럼 구는 늙은 첫사랑처럼 굴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으나 엄마가 하란 대로만 하는 꼭두각시로 살진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도 동시에 들었고.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종일 딱딱한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하고 와서 피곤한테 엄마의 수다까지 들어줘야 하나 귀찮고 짜증 났을 것이다.

'법륜스님'이 엄마들에게 늘 하는 말씀 중에 3살 되기 전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옆에 있어주고, 20살 넘으면 관심 끄라는 조언이 있었는데, 남의 일일 땐 왜들 그러질 못하나 쯧쯧거렸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 일 이후로 아들과 대화 나누는 게 좋아서 '아무 때나' 다가가는 것을 멈추게 되었다. 내 마음이 아무리 순수한 애정 때문이라고 해도 상대가 불편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

과장해서 말하면 스토킹도 내가 좋다고 일방적으로 퍼붓는 애정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닌가. 관계는 상대가 원하는 속도에 맞출 줄 아는 배려가 우선이다.


내가 한라봉이라면 이미 자란 상태에서'후숙'하고 늙는 변화를 겪지만 자식은 작은 알맹이에서 커다란 한라봉이 되는 변화를 겪는다.

큰 변화를 맞는 자식에 맞추어주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 도와주는 거리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역시 자식만큼 날 성장시키는 것은 없다.


그런데 엄마바라기였던 귀엽고 수다스럽던 그 아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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