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중독자인 내게 요즘 '네가 왜 거기서 나와?'하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
겁나 잘생겼는데 스스로는 잘 모르는 것 같은, 어리숙한 매력을 가진, 나이 들수록 멋있어지는 남자, 바로 정우성 씨다.
톡톡 튀는 말발이나 직설화법을 화려하게 구사해야 살아남을 것 같은 유튜브 예능에 그가 나오는 걸 보면 신기하기만 했다. 미디어 환경이 진짜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격세지감도 느껴지는데.
내가 그를 직접 본 것은 아득히 먼 20대였을 때, 영화 홍보, 마케팅 일을 할 때였다.
처음 들어간 영화사의 어리바리한 막내 신입이었을 때라 적응하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었고.
정우성 씨는 내가 다니는 영화사에서 '비트'를 찍은 후 '태양은 없다'라는 영화를 찍는 중이었다.
'홍보마케팅'팀의 작은 방에서 혼자 선배들이 시킨 일을 정신없이 하는 와중에 뒤에서 큰 기린 같은 존재가 어른대는 느낌을 받고 휙 뒤돌아보았다. 키가 큰 그를 멍하니 올려다보았고, 정우성 씨도 멍하니 날 쳐다보았다.
마치 서로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했는데.
평소 스텝들과 잘 지내는 그가 영화사에 나타난 신입을 보고 놀랐는지도.
E인척 하는 I 성향인 나는 그만 당황해 휙 뒤돌아하던 일이나 했다. 붙임성 있게 인사도 못 건넨 나란 인간.
지금도 잘생긴 정우성 씨이니 몇 십 년 전이면 얼마나 더 잘생겼을 것인가.
그럼에도 사실 그땐 정우성 씨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네가 뭔데 감히 그분에게 그따위 소릴 하느냐! 고 하시면 그땐 뭔가 삐뚤어지고 개성 강한 연기파 배우를 좋아하던 시절이라... 예예, 양해 바랍니다.)
그랬는데 나처럼 그도 나이 들어가는 걸 보면서 인간다움이 느껴졌다. 수십 년간 한결같이 자기 일에 진심이고, 매너 좋은 그를 보면서 잘 숙성되어 가는 와인 같다고 느꼈는데.
딴따라 판이라고 부르는 영화판에는 개성 강하고 재능 많은 사람들이 정말 득실득실하다. 우리끼리 하는 얘기 중에 '착한 사람은 영화 못 만들어, 배우나 감독이나.'라는 게 있었다.
신기하게도 예민하고 성깔 더러운 사람일수록 재능이 뛰어났고, 신입일 때 만났던 사람 중에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단 둘, 정우성 씨와 봉준호 감독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멋있고 뛰어난 아티스트가 된 그들을 보면서 그런 것이 편견이었음을 깨닫는다.
끝장나게 잘 생기고 연기를 잘해도 사라진 배우들이 얼마나 많고, 첫 작품이 대박 나도 사라진 감독들이 얼마나 많은가. 살아남은 그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면,
당장의 이득보다 영화에 진심 열정을 가졌고, 작품이 망해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해왔다. 긴 시간을 버텨오는 뚝심을 이길 것이 있을까.
외모, 재능 위에 뚝심이다.
정우성 씨와의 오래전 짧은 스침을 생각하면 묘하게 웃겨서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불타던 신입시절이라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가 변하지 않고 한결같이 기린처럼 영화현장을 어슬렁거리길 빈다. 당신 같은 배우가 있어서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