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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Nov 28. 2023

치매어머니를 돌봅니다

가상과 현실의 장소를 넘나들며 감정을 다루어 본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유독 힘이 쭉 빠지고 이유 없이 낙심이 되는 날 말이다.

이유야 많겠지만 그 이유를 들여다보는 것조차 회피하고 싶은 날이 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을 눌러도

전화를 두 번 해도 안에서 들리는 기척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께 전화를 더 해보라 재촉했다.

현관문 밖에서도 들릴만큼의 벨소리크기에도

몇 분이나 지속되는 벨소리에도 안의 기척을 느낄 수가 없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한참 후 부스럭 덜커덕 소리가 나며 현관문을 연다.

깊이 잠이 드신 모양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건강한 컨디션이셨다.


순간 맥이 풀리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또 밤새 어떤 세계에 머무셨는지 장롱의 이불이 거실 소파에 올려져 있고, 여기저기 이해 못 할 생활의 흔적들이 보였다.

그 흔적들을 되려 내게 묻는다.

왜 이렇게 되어 있으며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고...


기억 못 함이 어머니의 병인줄 알지만,

불쑥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휘리릭 휘리릭 정리를 한다.

이불은 어떻게 했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되려 물어보았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나의 질문에 본능적으로 당신의 살림방식대로 정리를 해 나간다.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가라앉히고 싶지 않다.

이런 날은 잠시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대충 급한 일들을 처리한 후 가까운 동네 카페에 앉는다.


무얼 새로운 메뉴를 시켜 볼까 싶다가도

후회할 것 같아 늘 먹던 커피로 마신다.


아주 오랜만에 인별그램을 휘 둘러본다.

세상에나~!

타인의 휘황찬란한 삶에 알지 못할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에 있어 나의 삶도 손색이 없는 과정인데 , 그럴듯하게 살고 있다는 포장에는 숙맥이다.

그래서 향방이 없는 억울한 마음이 살짝 든다.


드러나고 드러남에 상응하는 상당한 불편감을 감수하고,

보암직한 것으로 포장을 해 보느냐...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휘 젓는다. 일단은 보류하고 브런치로 넘어온다.


편하지는 않지만 만나면 한 번씩 기분전환되고,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을 도와주는 에너지 많은 외향적인 친구 같은 인별그램을 닫는다.


대신 있는 듯 없는 듯 식상하지만,

마음 편하고 위로받는 브런치를 열어 키보드에 손을 얹는다.


모가 나거나 엇나가는 마음조각과 생각조각들을 낱자의 조합에 맡긴다.


쓰고 뜨거운 커피로 간간히 목을 축인다.


쏟아진 무형의 마음이 글이 되어 흰 빈 공간을 채운다.


이즘에 이르러서야 카페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악이 귀에 들어온다.

커피의 향긋한 향이 코끝에 머문다.


이제 키보드를 접는다.


나의 본질을, 나의 가치를 언제나 알아주는 듯한 친구를 만나고 오듯,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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