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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Dec 04. 2023

밥 하는 여자라서...

나는 밥 하는 여자다.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사실 요리는 남편이 더 잘한다) 밥 하는 것은 나의 주된 업무 중 하나라는 생각이 확고하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 생후 3년의 애착관계가 중요하다는 육아론에 따랐다기보다 그 작고 예쁜 아기를 하루종일 본다는 기쁨에 자발적 전업주부가 되었다.

전업주부의 업무는 아기를 돌보는 것뿐 아니라 가족의 의식주에 관한  A부터 Z까지 모든 일을 신경 쓰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그 가치를 의심하다가, 비자발적인 상황에 처했다가 종국에는 낙심하는, 그런 구간을 지나왔다.


가정을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회사 출퇴근으로 자리를 지키는 남편은 졸지간에 천하에 나쁜 놈이 되었다가, 나태한 놈도 되었다가, 하루에도 수없이 그 모습을 달리했다.


'이 또한 지나리라'라는 말처럼 아이를 키우며 밥 하는 일의 시간도 흘렀다.


지난 일은 아름답기 마련인 착각인 것일까.


밥 하는 여자라서 지금의 나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회사일에 사회관계에 거기다 어중간한 집안일에 챗바퀴 돌듯 살고 있었을 것 같다.


밥 하는 여자라서 나는 생각이란 걸 하게 됐다.


'밥 하는 여자'라는 단어가 주는 약간은 무가치한 느낌의 가치를 생각했다.

생각하다 책을 읽고, 나누고, 글을 쓰는 지금에 이르렀다.


밥을 하는 일은 나의 임기응변적 역량을 모두 동원하는 일이었다.

제한된 경제력으로 최고의 가성비를 내는 살림을 기획 실행해야 하고,

없는 솜씨로 가족들이 즐겁게 먹어낼 요리를 고안하고 만들어내야 하고,

자잘한 집안일들을 어떻게든 빨리 해두고 개인시간 확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을 필요로 했다.

마지막으로 돈 안 드는  삶을 성찰하기 위한 방법 찾기까지 그야말로 그어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도 버금갈 역량이 필요한 일이었다.


밥 하는 여자라서 행복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리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거기 그 모습으로 있는 사람이라서 행복한가?

사람은 이내 지루해하고 새로움을 모색하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이라서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알아보는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월요일이다.

평소보다 도로는 더 막히고 해야 할 일을 해내기엔 고단스러운 마음이 배로 드는 월요일이지만, 다각도로 자신의 자리를 뚫어보며 작은 행복조각들을 발견해 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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