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 snail Dec 25. 2023

시상식장 가는 길

호수처럼 파란 하늘에 솜털 같은 하야 구름이 점점이 떠 있다.

유리알처럼 맑은 겨울 공기,

햇살과 맞부딪쳐 반짝이며 수성교 아래를 흐르는 신천강물은 더없이 사랑스럽다.


설레는 길목

청춘의 길목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던 어느 한 날과 많이 닮았다.


중년의 깊숙한 골목을 걷고 있던 중 잠시 스무 살의 청춘을 맞본다.

40을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 하여 공자는 불혹이라 하였고, 현대는 불면 훅 쓰러지는 나이라 하여 불혹이라 한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보통의 중년의 삶을 사는 마흔은  한 가정의 부모가 되고, 한창 품을 벗어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구간이고, 노년기를 보내는 부모를 챙겨야 하는 것이 보통이리라. 요즘은 다양한 모습의 중년 모델이 많지만 나는 부모이자 자녀인 중년에 속해 있다. 하여 이러한 중년의 모습이 일반적으로 보인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이니까)

자의적이지는 않지만 타인을 위해 사는 시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 또 스무 살의 청춘이 주지 못하는 중후한 삶의 기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 알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불안감과 초탈감이 공존해 있다.


이대로 살다가는 못 견딜 것 같은 열정이 꿈틀대다가

이내 '별거 없는 세상'에 초연함이 스며들곤 한다.


무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지만,

딱히 돌아가고 싶지도 않은  삶의 연대가 이어지는 일상가운데, 오늘 아침 순수한 설렘이 몰려온다.


이미 한 달 전에 정해진 일정이었고,

작은 글쓰기 공모전에 입선한 사실이 주는 설렘도 사라져 버린 후였다.

함께하지 못하고 편찮으신 어머니를 돌보러 가는 남편을 배웅하고,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를 위해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교회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가까스로 꾸물거리는 둘째를 준비시켜 시상식장 가는 차에 오른다.


하늘이, 햇살이, 강물이 아름다웠다.

그곳을 통과하고 있는 내가 아름다웠고 행복했다.

신명형 둘째가 듣고 있는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마저 부드럽게 들렸다.


때마침 비워진 주차자리,

웨이브가 잘 나온 머리,

꾸안꾸 얼굴에 색이 튀지 않는 립스틱을 한번 더 덧바른다.


모두가  당선인인 시상식장 안은 이내 나의 설렘을 무던하게 만들어버렸지만,

기분 좋고 특별한 하루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무생물이 생물이 되는 공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