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low snail Mar 01. 2024

생일에 정석이 있을까요?

3월 1일, 이른 아침을 시작한다.

공휴일이라 한산한 도로, 공휴일 이른 아침을  소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라디오 생방송이 특별함을 더해준다.


눈코 뜰 새 없는 작년 말을 시작으로 1,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이한다.

생각해 보면 호형호제라 할 수 없는 홍길동만 억울한 건 아니다.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고,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던 나의 일상도 억울함을 펼치자면 홍길동만 못하랴.


요일 오전 3시간 수업을 끝내고,

치매어머니 약을 챙기기 위해 방향을 잡았다.

'우리 집' 부재중 전화가 2통이나 와 있었다. 급한 일이 아니고선  알뜰살뜰 연락을 주고받는 모녀지간이 아닌지라, 무슨 일인가 싶어 운전 중 전화를 건다.


밝은 목소리, 별일은 아닌가 보다.

전화를 한 이유는 그날이(28일)이 내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미역국 한 그릇, 네 손으로라도 끓여 먹었는지 묻는다.

순간, 울컥 서러움이 몰려왔다.

생일이었구나. 생일도 잊을 만큼 동분서주 뛰어다녔구나.

힘들게 낳아주고 지금까지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잘 커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마무리하고 끊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오늘이 내 생일이래~ 엄마가 전화 와서 알려줬어!"

"어, 시내 한 번 가자. 팔찌 하나 사줄게."

생일문화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사실 생일을 챙기는 일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 그런 그를 무심하다 말할 수는 없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나의 엄마는 생일이면 평소보다 정성스러운 상을 마련했다.

금방 한 따듯한 밥이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과, 걸쭉하게 끓여진 미역국. 송송 썬 파가 들어간 짭조름한 계란말이와 직접 기름을 발라 구운 김. 겨울배추로 시원함을 더한 잡채.

케이크라곤 한 번 올라온 적 없는 생일상이었지만, 특별한 그날만의 정성이 지금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생일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미역국은 먹었는지 엄마의 전화가 온다.

'꼭 끓여 먹을게'라는 말을 하고 끓여 먹기도 하고 넘어갈 때도 있던 시간들이었다.


어머니집에 들러 늦은 오전약을 챙기고,

3시에 나갈 아이에게 먹일 떡볶이와 김밥을 사들고 숨 가쁘게 움직였다.


집에 도착해 부랴부랴 떡볶이를 차리는데...

첫째는 케이크를 들고 오고,

둘째는 조그만 선물 꾸러미를 들고 온다.


아빠 통화를 옆에서 듣고, 이틀 뒤 있을 아빠생일과 함께 할 케이크이라며 적잖은 가격의 케이크를 준비해 둔 딸.


후다닥 옷 입고 엄마가 오기 전 동네 화장품 가게에 가서 산 로션과 가끔 마시는 카누 바닐라 라테를 준비한 아들.


아유...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고마운 생일상이었다.


가족 때문에 숨 가쁘게 움직이고,

가족 때문에 힘이 나고,

가족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의미를 두자면 크고,

무심해도 그만인 46번째 생일.

 이렇게 따뜻하게 보내고,

바빴던 2월에 종지부를 찍고,

3월 1일 남편의 생일을  맞아 오후에는 가족들과 따듯한 밥 한 그릇을 사 먹을 예정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