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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 snail Mar 05. 2024

꽃샘추위와 백미러와 모성

꽃샘추위


토요일 오전 이른 아침 산책을  따라나서준다.

꼬꼬마 시절에는 뭐든 24시간을 함께 했는데,

고등 입학을 앞둔 딸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숨 한 자락 쉴 틈을 차마 나를 위해 내어 달란 소리를 하기가 미안할 정도다.

입학을 앞두고 이른 아침 산책에 동행해 준 고마운 딸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포근하던 날씨가 3월 들어 맵싸하게 변했다.

낯선 학교, 어색한 교복에 새침한 3월 추위까지

극내향형인 아이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지수가 높아 온몸으로 진통하며 보낸 중학교 1, 2학년을 지나 안정기에 든 3학년동안, 안정적으로 성장한 딸이 대견하고 이쁘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앞둔 딸이 잘 해낼 거라 믿지만,

낯섦을 견뎌내야 할 딸의 시간을 생각하면,

등하교부터,  개입할 수 있는 모든 시간 속속들이 들어가 편안하게 도와주고 싶은 맘이 굴뚝이다.


그러나,

스스로 통과해 내야만 성장할 수 있기에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그저 어떻게 보냈는지 들어주는 것 까지가 내 영역이다.


하교 후 입학 선물과 학교 안내 자료들을 펼쳐내 놓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모습이 꽃처럼 이쁘다.


'말은 한 번 하고 왔냐고? 목소리는 한 번 내 보고 왔냐'라고 물으니 친구랑 전화번호 교환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할 일이 하나 있다며 이야기를 펼친다.

입학생을 위한 축사가 이어지고 있었고,

자기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어렴풋이 질문이 들렸단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아기 병아리는 안에서 깨고,

엄마닭은 밖에서 동시에 깨어주는 것을 사자성어로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아이는 잠결에 자기가 아는 질문이 들려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고 100여 명이 훌쩍 넘는 중에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보상으로 상품권을 받아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더 기쁜 건 아이는 목소리를 내는 일을 싫어해 1:1 과외도 버거워하는 걸 감안하면  대단한 일인 것이다.

스스로도 대답한 자신이 신기하다며, 졸던중 아는 이야기에 얼결에 대답이 나오긴 했지만, 손을 들고 대중 앞에 말을 했다는 것이 나는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몇 년 전 유정란을 구해 집에서 부화시키는 과정에서 알게 된 '줄탁동시'


또 다른 인생의 단계로 진입한 딸의 똑똑 부리질과,

엄마인 내가 도와줄 적격 한 순간의 부리질이 만들어낼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을 딸과 함께 시작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공부해서,

넓고 넓은 아이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를...


부화시켜 우리의 사랑을 듬뿍 받고 농장으로 갔던

오리 '너구리'와 '두식이'가 준 행운의 선물, 줄탁동시의 의미를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오늘 다시 한번 새겨보게 된다.


남부지방엔 여기저기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길가 물웅덩이에 고인 물이 얼마큼 겨울 끝자락 추위가 맵다.

갈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답듯,

겨울아, 이제 그만 봄기운에게 자리를 내주려무나.


한 없이 다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도

자라 가는  아이의 삶에 겨울끝자락 꽃샘추위같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멋지게 만들어갈 아이의 시간에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영역침해를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백미러


까불이 아들이 긴장을 내비친다.

모르는 선생님, 달라진 교실, 바뀌게 될 친구들.

그리고 성실하게 못했던 겨울 방학 숙제 리스트!!!

긴장하는 모습까지 귀여운 둘째다.

작년에 실내화를 빼먹고 간 경험이 있어 전날부터 실내화를 가방옆에다 두고 가방에 챙겨 넣으라고 당부를 했다.

D-데이 1을 넘기고 드디어 개학일!

조금 여유 있게 나와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백미러를 통해 아련히 바라본다.

저 천둥벌거숭이가 언제 저렇게 컸나 눈가가 촉촉해지게 만드는 백미러 속 아이.


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하루를 잘 보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출발한 지....

2분도 안 돼서 전화가 온다.

"엄마! 내 실내화 어디 있어??"

흠.....(엄마가 어젯밤부터...%#@$ 아련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만 말이 다 나온다)

부랴부랴  집에 가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실내화를 가지고 와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아이에게 들려 보내놓고 한숨 돌린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던 백미러의 여운이 웬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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