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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잡화상
'느달'의 단어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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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snail
Apr 2. 2024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한 흙은 소우주를 만든다.
들뜬 흙을 줌인해서 보노라면 마치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흙기둥들이 만들어내는 모습이 경이롭다.
그럼 감사와 무기력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내 마음은 어떤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을까.
잘 모를 일이다.
들뜬 마음은 어떤 모양 형상도 갖추지 못한 채 무질서한 생활로 이어진다.
삶이 나를 끌어 가는지, 내가 삶을 끌어가는지 모를 시간이 흐른다.
겨울 먼지 가득 쌓인 손 닿지 않는 곳의 책장 한 모퉁이처럼,
몸이 무겁다. 잘 찍을 일 없는, 남편이 찍어준 전신샷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사진 속의 내가 나임을 인정하기 싫어지는 순간과 마주한다.
규모 없었던 먹는 일, 자는일, 하는 일이 어지럽게 오버랩된다.
다짐이 되지 않던 마음이 다짐이 된다.
'다진다'
이른 봄, 여린 보리를 발로 꼭꼭 눌러 다진다.
당장은 밟히지만 더 단단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짙푸르러 질 보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캐모마일 차 한 잔은 오늘 아침 내 다짐의 현현이다.
검고 그윽한 커피가 주는 각성대신,
부드럽고 향긋한 캐모마일을 선택한다.
나를 다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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