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결국 세상까지 구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감상 후기

by 조은재

화제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봤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QnsFqn44uo


1) 영어 더빙에 한글 자막으로 감상했는데, 한국어와 영어가 수시로 교차되는 대사나 노래 가사가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어 더빙에 한국인 혹은 한국계 미국/캐나다인 성우들이 대거 참여해서 감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주연급인 '진우' 역의 안효섭이나 최종 보스 '귀마' 역의 이병헌, 주인공의 조력자로 등장하는 '셀린' 역의 김윤진 등 한국 배우들이 참여한 것도 흥미로웠고, 다니엘 대 킴이나 조성원 같은 익숙한 이름도 많이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외(특히 영미권)에서 케이팝을 묘사할 때 한국어가 등장하면 상당히 이질적으로 튀게 들렸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게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한 번에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녹아있습니다.

'한류'라는 말이 유행하고 해외에 케이팝 팬덤이 생긴지도 벌써 20년 가까이 돼가는데,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오그라들지 않게' 연출하는 영어권 작품을 이제서야 만났다는 게 반갑기도 하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2) 세대를 불문하고 케이팝 아이돌을 좋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눈에 매료될 정도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연출했습니다.

주인공인 걸그룹은 트와이스, 블랙핑크, 아이브 등을 참고한 티가 나고, 보이그룹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방탄소년단, 스트레이키즈, 에이티즈, 몬스타엑스 등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각각의 멤버들에게 개성을 부여하고 매력적으로 연출하는 방식이 케이팝을 기획 단계에서부터 면밀히 지켜본 사람만이 할 수 있게끔 조형되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할 음악 또한 상당히 준수한 수준의 케이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타이틀곡 'TAKEDOWN'에는 트와이스가 참여하기도 했고, 사자보이즈가 부르는 'Soda Pop'과 'Your Idol'에는 유키스 출신 케빈이 참여했습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참고했다는 아이돌들을 악곡에서도 참고한 인상도 있습니다. 악곡 뿐만 아니라 안무에서도 케이팝적 반영이 크게 드러나는데, 비주얼 퍼포먼스가 케이팝을 정체화하는 데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은 연출입니다. 3인조 소인원인 헌트릭스보다 5인조 사자보이즈의 무대를 연출할 때 이 포인트가 더 잘 보인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케이팝 아이돌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할 때, 현실 고증을 쉽게 무시하는 경우를 심지어 한국 작품 안에서도 자주 보는데, 이 영화에서는 케이팝 아이돌이라는 설정에 맞춰 철저히 케이팝 아이돌로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한 티가 역력합니다. '잘 나가는 인기 아이돌'로서의 설득력을 위해서는 고증이 필수인데, 그 부분을 아주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확실히 케이팝 아이돌 그룹에게서 '전대물'적인 속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지, 액션씬에서 전대물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좀 웃긴 했지만, 케이팝을 알맞게 해석해서 나온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3) 세계관과 연결된 메타포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연예산업이나 아이돌의 작동 원리를 완벽하게 반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케이팝만 오래 들여다본 게 아니라, 케이팝에 영향을 준 다른 시장도 잘 알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보였는데, 루미와 진우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를 반영했고, 역대 데몬헌터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구한말부터 지금까지의 '대중가수'들을 묘사해 케이팝의 레거시를 강조합니다.

가장 신선했던 부분은, 세계관에 의해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하는 임무를 맡은 주인공과 그것을 방해하는 빌런의 구도를, 두 케이팝 그룹이 팬덤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로 치환해 직관적으로 설득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케이팝, 혹은 서브컬처 컨텐츠들이 심리적으로 약한 지점을 공략할 때 과몰입을 유발할 수 있고, 그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까지 그 구도 안에 담겨 있어 매우 탁월한 내러티브를 구축했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소소하게 비현실적인 '고증 오류'들이 있긴 합니다만, 큰 틀 안에서 시사하는 점은 너무나 케이팝 산업 안에서 충분히 논의될만한 것들이라서 보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 '응원봉을 든 군중'이라는 이미지가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는 게 새삼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작년 연말에 여러 해외 매체들이 '응원봉 집회'의 스케치를 왜 그렇게 열심히 찍어갔는지 이제서야 깨닫게 됐달까요.


5) 전령 역할로 등장하는 '호작도' 호랑이와 까치가 너무 귀여워요... 호랑이 인형 제발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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