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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소나 Aug 02. 2020

우리 집 세 번째 차를 위하여

그 이름 유모차

 남편에겐 남편 차가 있고, 나에게는 내차가 있고, 우리 아들에게는 유모차가 있다. 이 세대의 차 중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차를 고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아들의 유모차다. 남들이 다 가지고 다니길래 정말 그냥 사서 끌고 다니면 되는 줄 알았다. 

  

 유모차는 엄마의 동네 친구로부터 물려받아놓을 상태였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고, 밥 먹이고 트림시키기도 버거웠기 때문에 우리에게 유모차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대학원 졸업논문을 구상하는 수준의 월반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슬슬 유모차를 태워볼까 하고 꺼내보니 그 친구는 무식하게 크고 무겁고 오래된 모델이었다. 아차 싶어 그때부터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남편과 나의 육아템검색은 시작부터 다르다. 필요한 아이템이 나타나면 남편은 네이버 페이에서 중간 정도 되는 모델이 뭔지를 먼저 보고,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해쉬태그를 눌러본다. 우리의 비극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결전의 그라운드에서 내가 꺼낸 카드는 스토케 트레일즈였고, 남편은 잉글레시나 퀴드였다. 두 모델은 4배 정도의 가격차이가 난다. 물론 내가 고른 게 더 비싸다.



(왼) 스토케 트레일즈 오프로드 휠 (오) 잉글레시나 퀴드

(사실 이 두 모델은 가격뿐만 아니라 무게, 장점, 용도 등 거의 모든 스펙이 정반대 제품입니다)


 당시의 나는 나도 모르게 쌓인 육아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던 것 같다. 아들을 위한 육아템이라면 가격표를 보지 않았고, 바이럴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않고 sns에서 좋다는 건 다 샀다. 유모차도 같은 맥락의 결과물이었다. 그 증거로 트레일즈는 내 차 트렁크에 안 들어간다.

  합리적이고 온순한 공대 남편은 나의 선택을 보고서  "아 와이프가 유모차는 디럭스를 사고 싶어 하는구나"로 이해했다. 사실 그때의 나는 디럭스, 절충형, 기내 반입형 유모차가 뭔지 1도 알아보지 않았었다. 다행히 하늘의 도우심으로 나는 남편의 말에 잘 설득되는 타입이었고 우리는 디럭스급의 절충형 유모차인 잉글레시나 트릴로지 아들의 유모차로 맞이다. 내가 그때 고집을 부렸더라면, 유모차는 차 지붕에 끈으로 묶고 다녔으려나.



박스 까고 첫 시승의 순간


그렇게 유모차를 구입했고, 나는 그 와중에 아들의 이름을 손자수로 새긴 유모차 가리개도 샀다. 이제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날을 골라 나는 밀짚모자를 쓰고 남편은 아메리카노를 들고 아이와 함께 세 식구가 공원에 놀러 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시험 삼아 동네를 돌아볼 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왔는데 우리는 5분도 안돼 철수했다. 태어나서 자동차를 처음 본 아이가 헤드라이트와 아이컨텍을 하고 자지러지게 울었기 때문이다. 이 쫄보를 어쩌지.


집에갑시다 어머니

 사실 아이 탓만을 할 수는 없었다. 태어나고 바로 코로나가 터져서 만난 사람이라고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밖에 없고 외출이라고 해봐야 집 앞 현관 정도였으니까. 아이에게 처음 마주한 빠방은 안광이 형형한 호랑이를 만난 충격이었을지도 모른다.


집 베란다에서 유모차 타는 연습을 하게 되다니

 

 내 돈 주고 산 몇십만 원짜리 유모차를 태우는데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니. 밀려오는 현타. 다음날부터 빠방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우선 남편이 출근할 때 같이 나갔다. 아빠가 차에 타고 시동을 걸고 출발해서 떠나는 모습까지를 매일 보여줬다. 할머니가 놀러 왔을 때도 마찬가지로 배웅했다.


 자 봐봐. 아빠랑 할머니가 빠방에 타고 있어. 빠방은 무서운 게 아니야.



 그리고 매일 아침 아기띠를 하고 산책을 나갔다.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고, 가끔은 동네 파워인싸형아가 '안녕!' 하고 인사도 해주고 지나갔다. 그 시간대는 어린이집 등원 시간이기도 해서, 쪼꼬미 형아 누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형같이 째꼬만 한 아이들이 저마다 야무지게 마스크를 하고 나름의 출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 아들도 자신의 머지않은 미래를 직감했으려나.


햇살맛집 동네산책

 첫날엔 아이구 예쁘다며 다가오는 할머니를 보고 애앵하고 울었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힙시트에 얹혀진 같은 처지의 친구를 먼저 쓰다듬어보는 용기생겨났다. 이것이 사회화인가.

 아이도 산책이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도 아이와 단둘이 나가는 외출에 적응이 되어갔다. 첫날은 내 팔이 다섯 개였으면 싶게 허둥댔는데 산책시간도 점점 길어지고 코스도 넓어져서 산책하다가 은행 볼일도 처리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운동선수가 훈련하듯이 조금씩 꾸준하게 우리 둘의 세상을 넓혀나갔다.


산책하다가 빵집에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사러가고



   남들이 다 가지고 다니길래 정말 그냥 사서 끌고 다니면 되는 줄 알았었다. 동네에 흔한 유모차 탄 아기 중 한 명이 되기까지 이렇게 자잘한 노력들이 박혀있다는 걸 누가 알까.

  처음 내 차가 생겼을 때가 떠오른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바짝 아서 거북이 운전을 하던 때. 알게 모르게 욕도 많이 먹고 다녔지만 그래도 휴일에 드라이브도 하고 멀리 있는 맛집도 찾아가고 늦은밤에 친구를 데려다주고 혼자 뿌듯해하며 어른이 된 기분을 만끽하던 시절. 마치 다시 그때가 된 것처럼 유모차를 타고 아이와 함께 넓어진 세상을 누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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