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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소나 Aug 10. 2020

애기엄마가 손톱이 그게 뭐야

남이사 손톱에 돌을 붙이든 돈을 붙이든

"여보 내가 애기 볼 테니까 잠깐이라도 나갔다와"


 내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간지 넉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백일이면 곰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다는데. 오히려 그 시간 동안 사람의 몰골을 잃어버린 나를 보며 '이제는 쟤를 좀 밖으로 내보내야겠다'라고 생각했나 보다. 

  막상 남편을 혼자 두고 나가려니 전쟁터에 동료를 두고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부부는 전우애라더니. 자서 아동 바동 우유 타 먹이고, 찡찡거리는 애를 다독일 남편의 허술한 등짝을 떠올리니 마음이 짠해져 왔지만 손가락은 이미 친구들에게 카톡을 날렸다


언니 나랑 손톱 하러 가자


 네일아트라니. 지금 내 꼴에 손톱을 꾸미는 게 말이 되나? 혹자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잘라버릴 손톱에 뭘 그렇게 공을 들이느냐고.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꽃이 사치인 이유는 시들기 때문이라고. 나는 사치가 필요했다.


 그즈음의 나는 엉망이었다.(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친정엄마가 오기 전에는 씻지도 못했고, 밥다운 밥을 먹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임신하고부터 염색을 못했기 때문에 검은 머리가 귀까지 자라 있었고, 한 번에 세시 간 이상 잔 적이 없는 얼굴 잿빛이었다. 아이를 얻고 13kg이 는데 출산하고 거짓말처럼 딱 3kg 빠졌다. 정확히 아기 몸무게와 양수정도 되는 무게였다. 듣던 소문과 치도 다름이 없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삼일째 머리도 못 감았는데 이 와중에 네일아트라니. 내 꼴에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인스타그램을 뒤지는 손가락 신이 났다. #네일 #네일스타그램 #이달의네일 여행의 재미 중에 절반이 계획인 것처럼 네일이 가진 재미의 절반은 그 순간인 것 같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이번엔 뭘 해볼까를 고민하는 그때. 나에게 리모컨이 쥐어지는 그 시간. 친구를 만나기에는 모자라고 혼자 카페에 가기에는 넘치는 3시간. 나는 손톱을 했다.

  

아기낳고 첫 네일은 사과네일


  그 뒤로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꼭 손톱을 하러 외출을 했다. 샵에 가서 못 본 TV도 보고, 커피도 사 마시고, 원장님하고 두런두런 얘기도 했다. 콧구멍에 바람 넣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 금붕어가 수면 위에서 한번 뻐끔하고 제자리로 돌아가듯이 나는 그렇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애기 엄마가 손톱이 이게 뭐야? 손에 물 한 방울도 안 묻히고 사나 봐요." 아니요 이렇게 호사스러운 손톱을 하고 집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젖병 씻는 거예요. 이 번쩍이는 손가락으로 애기 옷 빨래하고 응가 기저귀 갈고 이유식 만들어 먹이고 다 합니다. 앞으로도 다 할 거고요 잘할 겁니다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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