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책 후기

명언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

by 실레

('실레의 글창고'라는 제 네이버 블로그 글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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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도이치는 처음 보는 문장에 꽂혀 자신이 농담처럼 말하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라는 농담을 처음 알게 된 독일 유학시절부터 현재까지의 괴테 연구를 떠올리며 저 문장의 출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도이치의 사유가 변화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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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도이치의 딸 노리카와 그의 남자친구 쓰즈키의 첫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대학 독서 모임에서 노리카가 발표한 후 쓰즈키가 노리카를 따로 찾아와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어때?'하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노리카는 '언어 시스템 자체가 인용이야'라고 쏘아붙였고 '보르헤스도 그렇게 말했거든'하고 그 말도 인용임을 이야기했다. 쓰즈키가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뒤에 '다빈치도 그렇게 말했어'라고 인용임을 밝히면서. 이에 노리카와 쓰즈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하는 에피소드다. 둘은 언쟁을 하면서 서로 명언을 인용하며 언쟁을 했다. 둘이 천생연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인용'에 관한 이야기다. 과연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는가? 인용은 모방에 불과한 것인가? 명언이 인용을 거듭하다 보니 희석되어 뜻이 변질되지 않았는가? 우리가 인용하는 명언의 출처로 여기는 인물도 사실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인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말은 이미 말해졌고, 그에 대한 변주곡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았겠지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이 것이 내가 소설을 읽으며 느낀 책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느꼈다. 그리고 책에 자연스레 그런 부분이 묻어 나온다.


느낀 점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책은 명언들로 휘감겨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명언을 적절한 타이밍에 쓰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도이치의 심리 묘사도 매우 잘 되어 있어서 몰입도도 높은 편이다.


후반부에 홍차 티백에 적힌 괴테 명언 출처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도 매우 흥미진진하다. 도이치의 교수 동료 시카리도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며 소설적인 재미도 뛰어나다.


일본은 만화나 소설, 영화 같은 작품에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이 꽤 많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서도 그런 사상이 잘 드러나는데, 그 사상을 풀어내는 과정이 예술이다. 억지스러운 복선이 전혀 없고, 자연스러운 전개를 통해 도이치가 '이 것들은 모두 이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며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는 사상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시카리 노리후미'가리후미'가 '이신 히카리'라는 가명으로 자신의 책을 고발하는데, 에필로그에서 도이치가 '이신 히카리'는 대체 뭐냐고 묻는다. 시카리는 유머가 없는 시카리라고 대답하는데 SHIKARI NORIHUMI에서 HUMOR를 빼고 철자를 재조합하면 ISIN HIKARI가 된다고 한다. 이 것도 매우 재밌는 포인트다.(옮긴이의 말에서 이 해석이 나온다.)


도이치는 괴테의 말을 빗대어 모든 것이 뒤섞인 '잼적 세계'와 잘 어우러진 '샐러드적 세계'라는 이론을 내세운 학자로 나온다. 책에도 나오지만 미국에서 문화가 뒤섞일 때 '용광로'와 '샐러드 볼'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다. 소설에서 드러나지만 작가는 샐러드적 세계관을 더 좋게 바라보는 것 같이 보였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어봤을 사람이 많겠지만, 아직 안 읽어본 이가 있다면 꼭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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