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하루종일 회의만 하다 제자리로 돌아오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민주적인 소통이 중요하다며 툭하면 이 회의 저 회의를 여는데, 결정은 결국 대표 마음대로다. 이럴 거면 왜 회의하자는 건지. 유달리 길었던 하루를 위로하고자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따고 마시고 있는데, 친구 A가 뭐하냐며 전화가 왔다. 겉으로만 민주적인 회의 때문에 진이 빠졌다는 얘기를 꺼내자 친구 A는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가 있다며 신이나 떠들기 시작하는데...
“남 얘기 경청해주는 척하면서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상사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필요하지! 논리?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부류의 사람은 말발로 사람을 홀려서 정신을 쏙 빼버려야 효과가 있다니깐. 참고하기에 아주 좋은 호프만의 소설이 생각나는군. <스뀌데리 부인>이라는 작품인데, 짧아! 단편이야. 나는 호프만이 낭만주의 작가라 환상 문학만 쓰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도 썼더라고.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 소설 속에 녹아있어서 시대상황도 엿보고, 재미있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프랑스의 루이 14세 때야. 아니 글쎄 당시에 사랑하는 연인에게 보석을 선물하려고 밤에 나섰다가 강도를 당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았대. 소설에서도 범죄를 모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돼. 유사한 범죄가 계속되니깐 범인을 색출하려고 아주 혈안인데. 마침내 용의자가 잡힌 거지! 근데 용의자가 알고 보니 주인공 스뀌데리 부인과 인연이 있던 사람이었어. 부인은 의도치 않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고, 용의자를 대변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돼. 스뀌데리 부인은 실제로도 루이 14세와 왕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맹뜨농 부인의 총애를 받는 작가였대. 루이 14세는 그 유명한 태양왕이잖아. 절대주의의 전성기다 보니 법보다 왕의 결정이 중요했다고 해. 왕은 당시에 강도 사건에 예민하던 터라 용의자는 제대로 수사와 재판도 없이 사형될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 이때 스뀌데리 부인은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짜와서 왕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 데 성공하지! 너가 대표를 설득하려면 바로 이런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거든! 네가 백날 자료 만들어 가 봐라. 썰 못 풀면 안 통해! 이 책을 읽으면서 스뀌데리 부인의 전략을 한번 연구해보면 어때? 그리고 이 소설은 여러 겹의 이야기가 있어서 까보며 읽는 재미도 있거든. 강도 얘기 말고도 어떤 이야기가 있냐면...”
친구 A가 말하는 설득의 기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시대니깐 제멋대로 하는 게 이해가 되지만, 지금은 21세기인데... 이럴 거면 대표 혼자 기획하고, 보고서 쓰고, 정산하고 다 했으면 좋겠다.
<모래사나이 중 스뀌데리 부인/ E.T.A. 호프만(황종민 옮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