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문학 읽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호들갑 독일문학

by 박효경

호들갑 독일문학 10 지금 독일문학 읽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 기후위기가 걱정인 요즘, 필독해야 하는 한국문학


친구 A와 나는 후원하고 있는 환경단체의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건 즐거웠지만, 행사에서 나누었던 고민은 다소 무거워 깊은 생각에 빠져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조잘조잘 행사에 대해 감상을 떠들어댔을 친구 A도 묵묵히 내 발걸음만 맞출 뿐이었다. 공원 앞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가야 할 타이밍에 친구 A는 산책을 좀 더 하자며 나를 잡더니 깜짝 놀랄 멘트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지금 독일문학 읽을 때가 아닌 거 같아! 아까 활동가들 이야기 들었지? 기후 위기도 기후 위기인데,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과연... 하아... 얼마 전에 읽었던 한국소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네. 최진영 작가 알아? <해가 지는 곳으로>는 읽어봤어?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재앙이 닥쳤던 때를 시간이 흘러 생존자가 회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돼. 그런데 무서운 건 바이러스만이 아니더라. 살인과 약탈을 서슴없이 하거나 재난을 기회로 삼는 인간이 오히려 더 무서워. 소설 속에 사람들은 바이러스를 피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을 피해 러시아로 도망쳐. 근데 나는 꼭 요즘 같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사람들이 살려고, 버티려고 희망을 쥐어짜서 찾아 매달려. 무엇이 재난의 상황에 몰아넣었는지 진지하게 찾아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일단 상대적으로 약한 자들에게 분노의 화살만 쏘아대지. 소설 속에서 재앙은 모든 것을 허락하고, 동시에 인간다움의 모든 조건을 빼앗아 갔는데, 난 요새 현실에서 소설 속 상황이 계속 겹쳐 보여. 나 어렸을 때, Y2K가 뭔지도 모르고 종말이 온다는 소문에 겁에 질려서 보따리를 싸던 적이 있거든. 혼자라도 살겠다고 짐 싸던 어린 내가 우스웠던지 우리 엄마 아직도 그때 얘기를 하셔. 산다는 건 생존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건데, 참 어렵다 그치. 소설에서 ‘수치심만은 간직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일상이 재난 같고, 재난 상황이 일상 같은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게 ‘수치심을 알아차리는 거’ 아닌가 싶네. 문학 말이야. 가끔 무서워. 이야기에 끌려가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너무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단 말이지. 근데 독일문학이 참 그런 거 잘하는데, 아~역시 독일문학을 읽어야 하나. 카프카 알지? 카프카가 말이야...”



해가 지고 나서야 친구 A의 카프카 영업이 끝났다. 디스토피아 이야기에 흥미가 많은 나로서는 카프카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대충 대꾸하며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검색했다. 기후 위기를 마주할 각오가 필요할 거 같아 아마도 책 사러 서점에 들르지 않을까 싶다.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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