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동네에 참외 스무디를 기가 막히게 하는 카페를 발견했다. 참외, 수박, 여름 과일을 좋아하는 친구 A가 생각나 휴일에 함께 카페에 갔다. 한적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서 달고 시원한 참외 스무디를 행복하게 마시며 친구 A와 한참 수다를 떨다가 친구 A도 잘 알고 있는 지인의 연애 상담을 들어주었던 얘기를 하게 됐다. 상담 내용은 지인이 5년째 연애 중인데 요즘 권태기에 접어든 거 같다고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친구 A는 확실한 해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그분에게 전해! 둘이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태로운 커플에게 여행은 둘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어떻게 확신하냐고? 내가 요즘 읽고 있는 독일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비슷한 상황에 있더라고. 근데 여행이 관계에 답을 주더라! 무슨 소설이냐면 유디트 헤르만의 『단지 유령일 뿐』이야. 단편소설 모음집인데, 거칠게 요약하자면 여행 이야기야. 다만, 현재 시점에서 발생한 여행지에서의 사건을 다루기보다는 과거의 여행을 기억하거나 플롯으로 구성되어있어서 독특해. 과거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을 떠올린다거나 여행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회상하는 식으로 진행돼. 재미있는 건 일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님에도 등장인물 중 한 명만의 기억과 감정만 알 수 있어서 독자는 한 명의 입장에 몰입해 추억여행을 함께 할 수밖에 없어. 나는 특별히 「차갑고도 푸른」이란 단편이 좋더라고. 이 단편은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우편으로 받아. 1년 전 주인공의 여름 별장으로 ‘애인의 지인’과 ‘지인의 지인’이 놀러와. 주인공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를 아련히 떠올려. 그들이 별장에 머물렀던 순간을 모두 기억한다는데, 하필 ‘지인의 지인’의 눈동자 색을 기억한다?!? 순간 느낌이 왔잖아! 좋아했구나! 애인이 옆에 있는데도! 흔들렸구나! 오호라! 하면서 정성스레 풀어낸 주인공의 감정과 기억을 소중하게 읽었지 뭐야. 다른 단편들도 여행하면서 자연스레 관계가 정리되고,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그걸 풀어낸 문장이 아름다워서 아껴 읽게 돼. 여행이란 게 일상에서 비켜있다 보니 평소엔 지나쳤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되는 거 같아. 그분도 둘이서 여행을 가보라고 해봐! 둘 사이에서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알아차릴지도 모르고, 혹시 아니 갑자기 새로운 관계가 시작될지도! 뭐? 단편 속 주인공과 지인의 지인은 어떻게 됐냐고? 캬~ 이게 또 간질간질하면서 좋은 부분인데 말이야...”
맛 좋은 참외 스무디 덕분이었을까. 간만에 친구 A의 소설영업이 재미있게 다가와 신나게 듣고 있었다. 그때 지인의 카톡이 도착했다. 눈부신 반지를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고 다정하게 웃고 있는 지인 커플의 사진이었다. 프러포즈를 받았단다. 역시 커플 걱정은 부질없음을. 아 내님은 어디에 있나. 나는 언제까지나 좋은 것은 친구 A랑만 나눠야 하나....
<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박양규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