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연말 모임이 늘어나면서 말실수도 늘기 시작했다. 입을 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다가 유달리 요즘 지나치게 조심하는 내가 피곤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서로가 조심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의 실수를 너그러이 봐줄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하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맞는가 고민하고 있는데...
“워낙 삶이 거치니깐 사적영역에서만큼은 상처받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들이 아닐까? 사실 실수를 지적하고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바꾸고... 이런 과정이 복잡하고 에너지가 드는 일이니깐 애초에 그런 과정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지 뭐. 한동안 ‘무해함’이 콘텐츠에 주요 트렌드였잖아. 근데 소설에 무해한 캐릭터는 확실히 매력이 떨어지긴 한 거 같아. 이번에 무해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를 발견했는데 말이야. 클라이스트 <미하엘 콜하스>의 말 장수 콜하스야.
이 주인공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벌이는 일들이 황당한데 또 좀 이해가 가기도 해. 말 장수 콜하스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말을 파는데, 융커라는 귀족의 성을 지나려는데 부당하게 횡포를 부리는 거야. 콜하스는 정당하게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융커랑 법조계 정치계가 전부 한통속이라서 다 기각된 거야. 콜하스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선제후를 찾으려다가 아내까지 잃게 돼. 이제 흑화한 콜하스가 복수를 결심하는데, 이게 진짜 유해해. 폭력적인 그의 선택은 정당하진 않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권력자들은 콜하스에게 관심을 주었을까? 이런 고민이 절로 든다고. 근데 또 이 소설이 몰입도가 장난이 아닌데,
사건과 갈등이 계속 계속 이어져서 빨려들어가면서 읽게 돼. 클라이스트는 희곡을 주로 썼는데, 그래서인지 장면전환이나 사건의 갈등 그리고 대화가 진짜 찰져서 쫀득해. 요즘 인물의 입체성에 대해서 많이 논하던데, 그러기에 너무 좋은 작품이 아닐까? 너 말마따나 무해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많이 논의되고 있을 때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 같이 모임을 해보면 어떨까? 유해한 모임을 하면서 마구마구 실수도 하고!...”
아차차 나의 실수. 모임 중독자에게 아이디어를 흘리고 말았다. 친구 A는 또 나를 얼마나 들들 볶을 것인가. 기승전 책영업으로 끝나는 친구 A는 과연 무해한가 유해한가...
<미하엘 콜하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황종민 옮김)/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