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독일문학
연말이 다가오니 자연스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루지도 못할 원대했던 올해 목표 목록을 읽으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아득해졌다. 그만 아등바등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템플스테이나 다녀올까?’ 싶어 친구 A에게 푸념을 늘어놓는데...
“너희 어머님, 간사님 아니시니? 템플스테이 괜찮겠어? 템플스테이 좋지... 공기 좋고, 물 좋고, 건강한 음식 먹고, 새벽같이 일어나면! 다시 도시가 그리워질 거야. 어휴,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다녀서 그런가, 도시가 최고다 싶어. 그래도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괜히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싶을 때가 오지. 근데 이번에 비슷한 느낌을 받은 소설이 있거든. 분명히 20세기 초반 유럽 작가인데도 묘하게 불교의 기운이 느껴져. 마치 구름 낀 어느 날 부처 여럿이 바티칸에 있는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열반과 해탈을 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구스타프 마이링크의 <나펠루스 추기경>이란 작품인데, 총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 이 소설은 “바벨의 도서관”이란 시리즈 중 하나인데, 보르헤스가 선택한 작품을 해제와 함께 묶은 기획한 시리즈야. 앞부분에 보르헤스가 왜 이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는지 소개하는데 이거 읽는 것도 재미있더라고. 구스타프 마이링크는 독일 신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래. 설명답게 세 단편 모두 영혼, 마법, 환영 등과 같은 요소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죽음이라는 개념에 골몰하는데 우습게도 곧 삶에 대한 태도가 느껴진달까. 죽음과 삶은 마치 종이 한 장 차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음습하고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드는 단편이라 다 읽고 나서 께름칙한 여운이 계속 맴돌다가 작가의 대표작인 <골렘>이 읽고 싶어지는데, 아뿔싸, 절판이더라고. 친구! 책의 수명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우리는 언제 이들을 만날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네. 무릇 책이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구할 수 있을 때 재빨리 챙겨야 한다네. 어! 보니깐 사람들 팬트리는 꾸역꾸역 채우면서 말이야. 책도 그렇게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불교 뭐 동양철학 그런 거 잘 모르지만, 그래도 열반이니 해탈이니 하는 건 욕망을 끊어내는 거 아닌가? 해탈 운운하면서 참...친구 A의 책에 대한 소유욕은 어디까지 이어질지...
<나펠루스 추기경/ 구스타프 마이링크(조원규 옮김)/ 바다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