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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효경 Oct 19. 2023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는 찐득하게 서늘한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42

  - 쌀쌀한 날씨에 어울리는 찐득하게 서늘한 독일문학          

 


    큰일이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아까 오후 늦게 마신 커피가 뒤늦게 제 역할을 시작한 듯하다. 양을 세어보고 자라도 세어보고 ASMR도 틀어보고 스트레칭도 해보고 별짓을 다 해도 소용이 없다. 최후의 수단인 친구 A에 전화를 걸어본다...    



    “잉? 웬일이래, 이 시간에 깨어있고? 카페인에 지다니 이런 나약한 인간. 나? 캬~ 요새 날씨가 쌀쌀해지니깐 독서가 너무 잘되는 거 있지? 여름에 그렇게 안 읽히더니만, 책도 날씨를 타나 봐. 쌀쌀해지니깐 습하고 찐득한 소설이 읽고 싶더라고. 테레지아 모라라는 헝가리 출신 작가인데, <이상한 물질> 읽고 있었어. 오 무슨 일이야! 내용이 궁금하다고?(친구 A의 입이 귀에 걸린 게 보이는 듯하다.)


이상한 물질 표지

단편 모음집인데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 어느 국경 근처 시골 마을이야. 이곳은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 넘거나 넘어오는 이들을 잡으려는 감독관,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에게 돈을 받으며 몰래 협력하는 마을 주민들 등이 등장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이고, 외로워 보여. 국경을 넘는 호수라는 공간은 주요한 배경이 되는데, 소설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습지의 물이 내 발목까지도 물이 차서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작가가 선명한 색채를 들어가며 풍경을 묘사하는데도 계속 안개가 낀 듯 해. 뚜렷한 사건과 갈등이 있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을 관찰하는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이야. 빨려 들어가 읽게 된다고 할까? 이런 분위기의 소설은 지금 아니면 진짜 읽기 힘든 거 알지? 여름엔 숨 막혀서 읽기 힘들고, 겨울에 손발이 시려서 읽을 수가 없어. 지금밖에 없어. 멜랑콜리아를 허락받은 계절에 걸맞은 작품이야. 여보세요? 야! 듣고 있냐? 여보세요?...”      


      

테레지아 모라

   듣자하니 친구 A가 가을을 타고 있는 듯하다. 친구 A의 영업 소리는 ASMR처럼 울렸고, 자장가가 되어 카페인을 잠재웠다. 고맙네, 내 친구.            



<이상한 물질/ 테레지아 모라(최윤영 옮김)/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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