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효경 Feb 15. 2024

하늘 아래 같은 책은 없다.

호들갑 독일문학

호들갑 독일문학 47

   - 하늘 아래 같은 책은 없다.     



    친구 A는 매번 약속 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한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10분을 늦는다. 친구 A의 잔소리를 피하고자 나는 꾀를 내어 어느 때부턴가 약속 장소를 본 목적지 근처에 위치한 서점으로 정했다. 책방에 있는 친구 A는 20분을 늦어도 30분을 늦어도 불평불만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다. 오늘도 약속 시간에서 10분 늦었지만 느긋하게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친구 A의 손엔 4권의 책이 들려있었다. 친구 A를 따라 나도 책방의 책장을 훑어보다 꺼내선 안 될 말을 해버리고 마는데...      



    “너는 이 책부터 읽어. 부르크하르트 슈피넨의 <책에 바침>! 19세기 말 도시에는 도로 위에 차 대신 마차를 끄는 말이 점령하고 있었대. 당시에 차가 말을 대신할 거란 소릴 하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더라고. 근데 지금 보시다시피 말은 말도 안 되게 급속도로 도로 위에서 사라졌어. 곧 책도 말과 다름없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경고의 이야기로 운을 띄어. 이 책은 그럴지도 모르는 책의 운명에 반기를 들려는 게 아냐. 그저 그럴 수도 있는 상황에 우리가 그렇다면 깨닫게 될 책의 빈자리에 대해 알려주지. 책과 관련한 일련의 문화와 그리워하게 될 책 그 자체의 물성에 관해서 말이야. 


물론 책 속에 언급되는 책도 많지만, 그 책들에 대한 ‘내용’보다는 책을 매개로 발생했던 사건을 언급할 때 필요한 요소로써만 활용되거든. 훔칠 책으로 골랐던 책이나, 구하기 어려운 귀한 책, 독서의 목적이 아닌 것으로 사용된 학대당한 책 등 말이야. 옛날엔 의료목적으로 두꺼운 책을 몸의 관절 부분을 내리치고 했다네. 만약에 한국인이 관련한 내용을 썼다면 라면 끓인 냄비 받침으로 쓰인 책 얘기를 했겠지. 아무튼,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보는 에피소드가 가득해. 책에 대한 집착, 책을 마주하는 태도 등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워. 읽을수록 그야말로 책에 관한 헌사가 아닌가 싶지. 


요즘 사람들이 책은 곧 독서라고 생각하는 게 안타까워. 책은 읽어야만 하는가? 아니! 책은 사는 거야! 너는 남들 눈에 똑같은 모양의 체크 셔츠를 반복해서 살 때 세상에 같은 체크는 없다고 합리화하지. 근데 왜 책 살 때는 망설이냐고. 책을 읽지 않았음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으로 새로운 책을 사는 걸 머뭇거리는건 어리석다고 본다. 책은 읽는 게 아니라 일단 사는 거야. 이 책을 읽고 나면 ‘아 책 그만 사고 읽어야 하는데.’ 이따위의 안일한 생각과 자조는 불필요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아니... 지도 맨날 책 너무 많이 사서 책장 부족하다고 툴툴거리면서... 어제도 그렇게 사고 오늘도 책 사는 게 괜히 찔려서 나한테 뒤집어씌우는 주제에...     



<책에 바침/ 부르크하르트 슈피넨(김인순 옮김)/ 쌤앤파커스>

매거진의 이전글 호들갑 독일문학 번외편 – 오두방정 자문자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